<뉴스와 시각>‘13세 미만’ 의제강간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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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동 / 사회부 차장

“스물일곱 살이나 어린 여중생을 임신시켰는데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로 판결하는 게 말이 됩니까.”

최근 대법원이 수개월 간 여중생과 동거하면서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각각 징역 12년·9년을 선고받은 A(45) 씨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지인들로부터 항의성 질문을 많이 받았다. 법원 관계자는 아니지만 “판사가, 그것도 대법관들이 그런 판결을 내렸을 때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의심이 가더라도 강간이라고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는 게 형사소송법의 원칙이다”고 대신 변명을 한 뒤 판결문을 구해 자세히 읽어봤다. 사건의 개요는 이랬다. 2011년 8월 A 씨는 서울 한 병원에 입원한 아들(당시 13세)을 보러 갔다가 중학교 3학년이던 B(당시 15세) 양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연예기획사 대표였던 A 씨는 키가 크고 얼굴도 예쁘장한 B 양에게 명함을 건넸다. 바로 다음날 자신의 차에 태운 뒤 강제로 키스를 시도했고, 며칠 뒤 차 안에서 성관계를 가졌다. 이어 다음 해 2월까지 네 차례 더 성관계를 가졌다. 임신한 사실을 안 B 양은 4월 말 가출한 뒤 A 씨와 동거에 들어갔고 그해 말 아이를 출산한 뒤 A 씨를 고소했다.

그런데 B 양이 A 씨와 나눈 수백 건의 카카오톡 대화, 편지 등에서 일반 성범죄 피해자들과는 다른 특이점이 발견됐다. 여중생은 처음 만났을 때의 A 씨 옷차림에서부터 어떤 점에 반했고 사랑에 빠지게 됐는지,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등을 절절히 표현했다. A 씨가 다른 형사사건으로 구속된 동안에도 거의 매일 면회를 하고 편지를 보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법리상 강간죄를 적용하기가 어렵다고 본 대법원의 판결엔 수긍할 만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일반인의 법감정으로서는 연예인이 되고 싶은 어린 여중생과 성관계를 갖고 출산까지 하게 한 40대 연예기획사 대표가 무죄라는 판결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현행 법체계에선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해도 강제성이 없으면 처벌하기가 어렵다. 현행법은 13세 미만 아동과의 성행위만 강제성이 없더라도 ‘의제(擬制)강간’으로 처벌하고 있다.

이전부터 성 미성년자 연령을 현행 ‘13세 미만’에서 미국·영국·캐나다처럼 ‘16세 미만’으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현 기준 연령이 조혼제도가 있던 100년 전에 만들어진 만큼 기준을 높이자는 주장이다. 반대론도 만만찮다. 과거에 비해 아이들이 훨씬 조숙하고 성숙해졌는데, 기준 연령을 세 살이나 올리기는 무리라는 것이다. 로미오(16세)와 줄리엣(13세)처럼 서로 사랑하는 아이들을 처벌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덩치만 컸지 물정 모르는 여중생들을 노리는 나쁜 어른들이 만연한 세상이라, 이번 연예기획사 대표의 경우처럼 사랑하는 사이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나이 차가 많이 날 경우는 예외 규정을 두는 방식으로 성 미성년자 기준 연령을 한두 살이라도 올리는 걸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sdg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