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갑 골초’ 기자, 금연 클리닉 체험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7일 충북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 서원구청 지하1층 서원보건소 내 금연클리닉에서 문화일보 고광일 기자가 체내 일산화탄소량을 측정한 뒤 금연 상담을 받고 있다.

‘담뱃값은 폭등하고 흡연구역은 매우 좁아졌는데 새해부터 금연해 볼까.’

지난 30여 년 동안 담배를 피워 ‘애연가’ 수준을 넘어 ‘골초’가 된 기자에게 금연은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험난한 과제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핀잔과 싫어하는 기색에도 나 몰라라 하며 하루 2갑 가까이 피우는 ‘흡연 중독자’에게 담배는 긴장감을 완화해 주는 ‘꿀맛 같은 안식처’와 같은 존재다. 담배가 떨어지면 정서 불안으로 아무 일도 하지 못해 여유분까지 챙겨두며 체내 장기처럼 항상 주머니에서 떠나지 않을 정도로, ‘기호품’ 수준을 넘어 반드시 지녀야 하는 ‘필수품’이 돼 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연초부터 한 갑에 3000원짜리 담뱃값이 5000원으로 무려 2000원이나 껑충 뛰어 흡연 비용이 1개월에 15만 원 안팎에서 25만 원 정도로 큰 부담이 되었다. 특히 흡연으로 가족들의 원성이 계속되는 데다 공공장소 등의 금연구역이 대폭 확대되면서 이제는 흡연 장소를 찾아 헤매고 다녀야 하는 등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다.

금연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없던 기자에게 이 같은 상황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호기심을 부추겨 지난 7일 충북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 서원구청 지하1층 서원보건소 내 ‘금연클리닉’을 찾았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자 상담사가 반갑게 맞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니코틴 의존도 평가문항이 포함된 금연클리닉 등록카드를 작성했다. 하루 평균 흡연량과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참기 어려운지를 묻는 항목 등에서 흡연 상태가 심각한 수준이어서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느껴졌다. 이어 일산화탄소 측정기를 입에 물고 힘껏 불자 흡연 정도가 강한 16PPM을 기록했다. 또 혈압기로 혈압을 측정하니 80∼130㎜Hg으로 정상이었다.

이 기록과 측정을 바탕으로 간호사 출신 금연 상담사의 상담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상담사는 담배 연기 속에 니코틴과 일산화탄소, 타르 등 40여 가지의 발암물질과 4000여 종의 유해물질이 들어 있어 암과 호흡기 질환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비롯해 정상적인 폐와 흡연한 폐의 색깔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인체 폐 구조물을 보여주며 흡연 시 폐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 금연 성공을 위한 식습관 개선과 흡연 욕구를 느낄 때 물을 마시거나 취미에 몰두하는 등의 행동요법도 강조했다. 이어 6개월 동안 1∼2주 간격으로 모두 8차례 방문토록 하는 단계별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기자가 “반드시 금연하겠다는 의지보다는 ‘한번 시도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찾아왔다”며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우게 돼 중독 상태인데 끊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며 조언을 구했다. 이에 박현숙(여·51) 상담사는 “담배를 끊기 위해서는 본인의 실천 의지가 99%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중요하다”며 “금연클리닉은 (금연)생각이 행동을 바꾸고 (흡연)습관을 바꾸며 인생이 바뀔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라며 금연 시도를 적극 권장했다.

약 15분 정도의 상담이 끝난 뒤 상담사는 기자에게 1주일 후 두 번째 방문할 때까지 하루 1개씩 팔과 다리·엉덩이 등에 붙이라며 7개의 니코틴(금연) 패치를 주었다. 금연클리닉에서 제공하는 패치는 10㎎, 20㎎, 30㎎ 등 3종류로 기자에게는 하루 30개비 이상 피우는 흡연자 용량인 30㎎짜리였다. 이를 주머니에 넣고 일어서는 기자에게 상담사는 “6개월 후 금연에 성공하면 체중계와 보온병, 손톱깎이 세트 중 원하는 한 종류를 기념품으로 제공한다”며 “꼭 성공해서 받아가길 바란다”고 덕담을 건넸다.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팔을 걷어붙이고 패치를 붙였다. 이 패치는 흡연자의 건강 상태에 따른 반응이 제각각이어서 일부는 두통과 어지럼증, 울렁거림, 불면증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20여 분이 지나자 머릿속이 뻐근한 것이 느껴졌다. 패치의 부작용 때문인지 심리적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흡연 욕구를 억누르며 버텼다. 약 1시간 후쯤에는 다른 것을 생각하다 보니 머리도 평온해졌다. 담배를 피우러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던 것도 2∼3차례 참았다.

하지만 채 3시간도 견디지 못했다. 금연 의지가 약한 탓인지, 중독 상태가 심각하기 때문인지 습관처럼 굳어져 버린 흡연 습관을 하루아침에 고치지 못하고 사무실 밖에서 추위에 떨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30여 년의 흡연 인생에 처음 금연을 시도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으나 담배 맛은 어떤 때보다 씁쓸하고 독했다.

기자와 같은 상황에 놓인 흡연자들에게 최근 담뱃값 인상과 금연구역 확대는 ‘금연 열풍’을 몰고 와 전국 보건소 내 금연클리닉마다 상담자가 지난해보다 2∼3배씩 증가하고 상담 예약자도 1개월씩이나 밀릴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안미혜(여·35) 상담사는 “금연클리닉에 찾아오는 흡연자들은 남자 80%, 여자 20% 정도이며 이 가운데 청소년도 약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며 “이들은 담배를 끊으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어 약 30∼40% 정도는 금연에 성공한다”고 말했다.

청주 = 글·사진 고광일 기자 ki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