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동력’ 산업 기밀이 샌다>防産·금융·전자업체 직원 메일 ‘1차 표적’

국가핵심 산업기밀 유출 사고의 상당 부분은 개인정보 유출이 시작점이다. 산업스파이는 첨단 기술이나 국가안보와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는 개인의 정보를 먼저 빼낸 뒤 거액의 돈과 파격적인 대우를 미끼로 접근하거나 약점을 이용해 협박하는 수법을 구사한다. 2차·3차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개인정보 유출부터 철저하게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보안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이유다.

특히 원전 관련 기업이나 전자·자동차업계 하청업체 직원들의 개인정보는 지금도 기밀유출을 노리는 스파이와 해커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게 공통된 진단이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 등 전 세계적인 경향이기도 하다. 임종인 청와대 안보 특보는 30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산업기밀 유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개인정보 보호가 우선돼야 한다”며 “개인정보 보호와 산업보안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국가 전력 안보 체계를 뒤흔든 한국수력원자력 기밀 문건 유출사건에서도 한수원 전·현직 수십 명의 이메일 계정과 비밀번호가 해킹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직원들이 협력업체와 주고받았던 업무 이메일에 첨부된 원전 도면 같은 자료와 퇴직자 개인정보 등이 상당수 노출된 것으로 사정 당국의 조사 결과 드러나고 있다.

보안업계에 따르면 한수원을 포함해 국내 대기업의 외주업체 직원들이 최고권한 계정을 갖고 시스템을 관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수원의 경우도 직원들의 아이디(ID)와 비밀번호(PW)를 하청업체 직원들과 공유하고 있어 하청업체 직원들이 한수원 직원 계정으로 접속해 업무를 진행하는 관행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비밀문서에 접속할 수 있다는 의미다. 고장 수리를 빙자한 해커의 접근 통로도 열려 있다. 한수원 본부에는 3500∼5000대의 컴퓨터가 있으며 하루 17∼20대의 고장 수리가 접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 최상급 보안 시설인 원전 운영에 대한 망을 분리한 지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은 데다 팀장급 이상에게 내·외부 파일 전송권리가 부여돼 있어 해킹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해 초 KB국민·농협·롯데카드 등에서 고객 정보 1억여 건이 새나간 사고도 영리 목적을 가진 하청업체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관행처럼 굳어진 금융사들의 정보기술(IT) 업무 외주화를 둘러싼 논란이 인 바 있다. 보안의 엄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외주로 해결하려다 벌어진 일이었다. 지난해 4월 삼성 계열사 전·현직 임직원 등 2만5000여 명의 개인정보를 유출시키려다 검찰에 적발된 A 씨도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A 씨는 업무에서 배제되자 경기 수원의 삼성전기 사업장에서 개인 PC를 이용해 삼성전기 업무 관리시스템 구축과정에서 확보한 전·현직 임직원 등의 정보를 자신이 개설한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에 등록해 유출시킨 혐의다.

중국의 미국 첨단 무기 기술 해킹 루트도 보안이 허술한 하청업체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수십 년 전부터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해 각종 무기를 개발해온 기업들이 네트워크 보안에 대해 신경 쓰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해커들이 주요 기관이나 기업의 하청업체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공개 입찰 방식을 통한 업체 명단 공개도 반대하고 있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