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까만 흙탕물인가? 사색의 동반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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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 / 스콧 F 파커 등 지음, 김병순 옮김 / 도서출판 따비

처음에는 ‘커피’라는 단어를 보고 이 책에 끌릴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만인을 위한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고 지레 겁을 먹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커피라는 단어에 혹한 독자라면 ‘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을 그 어떤 철학서보다 쉽고 흥미롭게 소화할 수 있다. 커피를 사랑하고, 사유하는 철학자와 커피 전문가 21인이 내놓는 커피 철학은 아메리카노처럼 쌉싸래하면서도 다방 커피처럼 달콤하다.

일단 생각해 보자. 커피와 철학간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커피 속 카페인은 각성 효과를 주고 집중력을 높이며 잠시나마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한다. 음식점에서는 혼자 앉아 있기 민망해도 커피숍에서는 당당히 혼자 앉아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이게 바로 커피의 힘이다. 커피가 보편화되면서 알코올 소비가 줄고, 이와 함께 카페의 토론 문화가 확산되며 프랑스혁명이 잉태하기 시작했다고 믿는 프랑스의 역사가 미슐레는 커피의 등장을 “시대의 흐름을 바꾼 상서로운 혁명”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만큼 인간사에서 어느 순간부터 커피는 힘이 세졌다.

이 책에서 커피와 관련된 철학적 사유의 문제는 크게 형이상학, 문화, 미학, 윤리학 등 네 가지 범주로 나뉜다. ‘형이상학’은 까만 흙탕물과 만병통치약의 경계에 선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동안 인식하게 되는 자아와 수많은 몽상, 그리고 고해에 대해 이야기하고, ‘문화’는 커피를 매개로 모이고 커피를 나눠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공동체에 대해 말한다. 이어 ‘미학’은 커피로 인해 파생되는 부가적 의미보다는 커피 자체의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 끝으로 ‘윤리학’은 브라질과 아프리카에서 최저생계비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재배한 커피를 전 세계 경제의 요충지에 있는 실력자들이 마시게 되는 상황을 통해 커피의 불공정한 무역 체계와 이를 둘러싼 윤리적 관점을 짚어 본다.

이 책의 필자들은 한결같이 철학적 사색을 위해 커피가 아주 훌륭한 동반자라 말한다. 하지만 그들과 동시대에 살았던 또 다른 이들은 커피를 ‘악마의 음료’라 부르기도 했다. 카페인 성분이 인간의 정욕을 일으키고 신체 발육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종교 단체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해마다 5000억 잔이 소비되는 커피는 이제 기호식품을 넘어 주식의 대열에 합류시키는 것도 무방하다. 그만큼 보편적인 소재이므로 이를 탐구하고 그 속에서 철학적 의미를 끄집어내는 건 상당히 타당해 보인다. 덧붙여 곁에 커피 한 잔을 두고 ‘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의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다면 더욱 쉽고 즐겁게 책 속을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