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진 교수의 드라마 세상>공감 어려운 상처와 낭만적 해법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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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기 어려운 상처와 낭만적 해법의 한계 ‘하이드 지킬, 나.’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할 때 성선설과 성악설은 빠지지 않고 인용되는 대표적인 학설이다. 성선설과 성악설은 분명하게 대비되는 학설 같지만, 착한 삶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결코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성장 환경의 영향이든 타고난 본성 때문이든 인간에게 악한 성격이 존재하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인간의 본성을 무쪽 자르듯이 선과 악으로 명료하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도 분명하다. 1886년 출간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가 지금까지 독자들을 사로잡는 이유도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원초적인 궁금증 때문이다. 로버트 루이스의 소설을 모티브로 창작된 이충호의 웹툰 ‘지킬 박사는 하이드 씨’ 또한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웹툰을 원작으로 재창작된 SBS 미니시리즈 ‘하이드 지킬, 나’는 어찌 된 일인지 방영 전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시청률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남자 지킬과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남자 하이드! 전혀 다른 두 남자와 사랑에 빠진 한 여자의 달콤 발랄 삼각 로맨스!”를 표방했지만, 시청자와의 공감대 형성에 실패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본성을 뒤집은 역발상의 참신함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달콤한 로맨스가 조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테마파크 원더랜드 상무 구서진(현빈)과 최면 전문의로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 치료에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는 최면 전문의 윤태주(성준)는 어린 시절 납치범에게 함께 유괴당했던 사건 때문에 서로 다른 상처를 안고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함께 납치된 친구 이수현과 함께 탈출하지 못하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구서진은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또 다른 인격 로빈을 만들어낼 정도로 자아 분열을 겪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구서진이 자신을 버리고 혼자 탈출하는 바람에 자신의 인생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이수현은 구서진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윤태주로 위장하여 살아간다. 구서진과 이수현의 오래된 상처에서 비롯한 불신과 오해가 핵심 사건인 셈이다.

원더랜드 전속 서커스단 단장이자 배우인 장하나(한지민)는 구서진과 로빈 그리고 이수현과 윤태주의 관계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등장한다. 서커스단을 내쫓으려는 구서진에게 항의하기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 구서진의 주치의이자 윤태주의 스승인 강희애(신은정) 박사의 납치 사건을 목격하면서 그들의 심리전에 연루된다. 그녀는 정신적인 충격으로 지워진 사건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윤태주의 최면 치료에 응하면서 로빈이 구서진의 또 다른 인격이라는 것을 알게 돼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 납치와 유괴에서 비롯한 정신적 외상 때문에 분열된 자아들의 각축은 좀처럼 공감이 가지 않는다. 장하나가 구서진과 로빈 그리고 이수현과 윤태주의 심리에 미묘한 변화를 일으키면서 형성되는 삼각관계의 로맨스 또한 그다지 달콤해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내 상처를 똑똑히 들여다볼 용기”이며 “사랑하고 또 사랑할 그 하루… 그 하루를 위해 나 여기에 있다”라고 말하지만 선과 악의 이분법을 넘어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인격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고달픔과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