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기자의 엔터 톡>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신인상’이 없습니다

올해 팔순이 된 배우 이순재는 사석에서 만나면 참 편안합니다. ‘꽃보다 할배’에 출연하는 네 명 중에서도 가장 맏형이자 방송가의 어른 중 어른인 만큼 인자한 웃음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곤 하죠.

하지만 한 가지 사안에서만큼은 양보가 없습니다. 바로 ‘연기’인데요. 연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주저하지 않고 고언을 던집니다. 그가 ‘미스터 쓴소리’로 통하는 이유죠.

제가 들었던 이야기 중 잊히지 않는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신인상’이 없어요. 프로의 세계에서 신인과 기성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라는 일침이었죠.

지난달 22일 열린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총 23개 부문에서 수상자(작)가 배출됐습니다. 하지만 ‘신인상’은 없었죠. 한국의 시상식과는 사뭇 다른 풍경입니다. ‘경력’이 아니라 ‘연기’로만 평가받는 것이죠.

요즘 KBS 2TV 월화극 ‘블러드’ 때문에 방송가가 소란스럽습니다. 주연을 맡은 배우 안재현과 구혜선의 연기력 논란 때문이죠. 모델 출신인 안재현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너희들은 포위됐다’에서 조연을 맡은 데 이어 곧바로 ‘블러드’의 주연 자리를 꿰찼습니다. 방송 시작 전 ‘다소 이르다’는 우려가 있었고, 결국 연기력 논란이 불거졌죠. 흔들리는 안재현을 지탱해줘야 할 여주인공 역의 데뷔 13년 차 배우 구혜선마저 구설에 오르니 ‘블러드’는 대중의 외면을 받았고, 5% 미만의 시청률이라는 혹독한 성적표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배우만의 잘못이라 치부할 순 없습니다. 요리사는 재료 탓을 할 게 아니라 자신의 실력을 탓해야 하니까요. 결국 배우들에게서 캐릭터에 맞는 연기를 끄집어내지 못한 PD의 잘못이 더 크지 않을까요? 만약 최고의 맛을 이끌어낼 자신이 없는 재료라면 애초에 장바구니에 담지 않는 것이 맞을 겁니다.

신인(新人)은 ‘새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사전을 찾아봐도 ‘실력이 부족해도 이해받는 존재’를 가리키진 않죠. 작품 경험이 부족한 신인과 다수의 작품을 거친 기성 배우의 기량 차는 당연할 걸까요? 하지만 경력과 인기도가 비례하지 않듯, 연기력과 연기 경험이 비례할 거라 생각해선 안 됩니다. ‘신인’이기에 연기를 잘하면 칭찬받을지언정, ‘신인’이기에 못해도 인정받길 원해선 안 된다는 거죠.

연예계 기사를 보면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이라는 표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거꾸로 묻고 싶습니다. ‘신인다운 연기력’이란 어떤 건가요? 프로의 세계에 던져진 순간, 신인과 기성의 구분은 무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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