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명동 거리는 걷기 좋고 강남 거리는 싫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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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

“어디 사세요?” 일상적으로 주고받지만 참 실례되는 질문이다.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사는 곳=경제력’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는 곳은 경제력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시골과 도시에 사는 사람은 삶의 패턴과 방식이 전혀 다른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러 도시들도 결코 하나로 묶이지 않고 각기 다른 형태로 변주된다. ‘강남’과 ‘강북’만 놓고 봐도 ‘서울’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지만 단박에 구분 지을 수 있는 각각의 고유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버드와 MIT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현재 홍익대 건축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가 몰랐던, 그리고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도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를 들어 왜 명동 거리는 걷기 좋은데 강남 거리는 걷기 싫을까? 분명 강남 거리가 더 규칙적이고 더 잘 닦여 있는데 말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이벤트 밀도’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이는 단위거리당 선택할 수 있는 출입구 수를 더한 경우의 수를 뜻한다. 강남 거리의 경우 큰 출입구 하나만 있는 대형 건물이 즐비하고, 호기심을 느끼고 방문할 만한 상점은 길거리에서 찾기 힘들다. 반면 명동은 다르다. 골목에 들어서면 다양한 기호를 충족시킬 만한 상점이 줄지어 있어 눈이 즐겁다. 또 다른 골목으로 발길을 돌리면 새로운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더 흥미로운 비교도 있다. 호텔과 모텔은 무엇이 다를까? 우선 투숙객 간 대면에 거부감이 없는 호텔에는 부대시설이 많은 반면 모텔은 그렇지 않다. 또한 외부 조망을 중시하는 호텔은 큰 창을 가진 반면 ‘은밀함’이 강조되는 모텔의 창은 최소한의 환풍구 역할만 할 정도로 작다.

펜트하우스와 옥탑방 비교도 흥미롭다. 건물의 최상층을 차지한 펜트하우스는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조망권을 안겨주고, 이는 권력의 또 다른 형태라 할 수 있다. 왕이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신하를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옥탑방도 꼭대기인데 왜 값어치가 낮을까. 저자는 ‘접근성’을 이유로 든다. 펜트하우스에 닿기 위해서는 숱한 신분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옥탑방에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런 차이가 바로 주거 공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건물을 짓고 도시를 만든다. 하지만 각 건물은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지어진다. 이런 건물들이 모여 도시를 형성하고 일정한 방향성을 가진 도시는 이곳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패턴에 변화를 준다. 이를 최근 큰 흥행을 거둔 영화 ‘킹스맨’의 대사를 인용해 표현하자면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