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화法 업고 ‘甲’이 된 野… 개혁 뒷전 포퓰리즘만 좇아

野, 법안처리 ‘몽니’ 부리면
주요 정책 하나도 실현 못해

방송법·외국인투자법 등 충돌
120개 민생법안 올스톱 되고
예산안 진통 등 ‘사례’수두룩

‘견제장치’마저 사실상 전무
“미국의 ‘패스트 트랙’처럼
보완수단 마련해야” 지적

국회선진화법과 정치권 포퓰리즘의 결합이 위험한 것은 대통령과 정부의 국정 운영을 때로 어렵게 만들고 주요 개혁과제들과 정책들을 장기 표류시킬 수 있는데도 이를 견제할 다른 수단이 없다는 점에 있다.

특히 야당이 선진화법을 방패로 삼아 몽니를 부리고, 여당은 못 이기는 척 이를 따라가는 식의 짬짜미 행태가 반복될 경우 국가의 미래를 내다본 고강도 개혁은 실종되고 포퓰리즘만 난무하게 된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선진화법 제정 이후 포퓰리즘 친화적 입법 환경이 조성됐다”고 지적하면서 제도적 보완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소통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선진화법을 고리로 한 국회 파행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지난 2014년 4월 임시국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여야가 방송법 개정안을 놓고 정면 충돌하면서 미방위뿐 아니라 국회 전체가 올스톱됐었다. 방송법 하나 때문에 미방위가 ‘식물 상임위원회’로 전락하는 바람에 120여 개의 다른 법안도 처리되지 못했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이 특별히 부탁한 원자력방호방재법안 처리도 지연됐다.

지난 2013년 말 국회 산업통상위원회에서 여야는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에 대해 의견 접근을 이뤄놓고도 한동안 법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다른 현안들에서 여야 간 입장이 맞섰기 때문이다. 그 여파로 그해 정부 예산안 처리가 지연되는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청와대와 정부에선 “이제 ‘제왕적 대통령 시대’가 아니라 ‘제왕적 국회 시대’ ‘제왕적 야당 시대’가 됐다”며 “이런 환경에서는 김영삼정부 시절의 금융실명제 도입, 김대중정부 시절의 구조조정 등 과감한 개혁이나 정책 추진은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6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개혁과 정책도 타이밍이 중요한데 ‘제왕적 국회’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누더기 법률’ ‘불어터진 국수 법률’을 양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나 정부도 마땅한 대응 방법이 없어 울상만 짓고 있다. 여야의 포퓰리즘 카르텔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동원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선진화법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미국의 ‘패스트 트랙’처럼 국회의 권한 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선진화법 체제에서는 적시에 적합한 법률을 만들기 어렵고 국회가 무원칙한 타협과 포퓰리즘에 빠지기 쉽다”면서 “당장 선진화법을 개정하기 어려운 만큼 박 대통령이 대국민 기자회견이나 여야 지도부와의 만남 등을 통해 더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소통하면서 국회를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남석·윤정아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