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7일 경기 안양시 만안구 소재 ‘이야기너머’ 사무실에서 오래된 가게, 주민 등에 대해 기록하는 ‘마을탐사프로젝트’에 참여한 주민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이야기너머에서 펴낸 대표적인 책인 ‘뜻밖의 여정’은 스테디셀러로 교보문고 등에서 구입 가능하다.
경기 안양 장애인 가족 대상
생애사 쓰기 프로그램이 계기
2013년 ‘뜻밖의 여정’ 발간
“전철서 눈물이 나 혼났다”
뜨거운 반응에 추가 인쇄도
이번엔 장애 당사자 삶 엮어
두번째 스토리 발간 준비 중
“병원에서 예방접종을 위해 동네 소아과에 처음 갔던 날이었다.(중략) 아기의 이곳저곳과 얼굴을 살피더니 나를 보고 (의사가) 했던 첫 마디가 ‘엄마, 알고 낳았지?’였다. 외모에서 다운증후군 티가 나니 어딜 가도 알 거라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의사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나를 놀라게 했다.(중략) 다른 동네 소아과를 찾아갔다. 병원 선생님께서 아기를 보고 가만히 안아주시더니 ‘건강하게 커라’ 하고는 진료를 보셨다. 몇 번 더 진료를 봐도 아무 얘기 없으셔서 혹시 모르시나 하는 마음에 ‘선생님, 다운증후군 아기예요’ 했더니 ‘알고 있어요, 어머니’ 하시는 게 아닌가. 일부러 말 없이 대해 주셨구나 생각하니 얼마나 감사하던지. 처음 의사 선생님께 받은 상처가 이 선생님을 통해 조금은 아무는 것 같았다.”
㈜이야기너머에서 펴낸 책 ‘뜻밖의 여정’의 일부다. 이 책은 경기 안양시 ‘수리 장애인종합복지관’에 다니는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장애인 자녀를 키우면서 느낀 여러 소회 등을 담고 있다. 문체는 투박하고 서툴지만 절절한 삶의 기록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책은 ‘보통사람의 모든 이야기’를 기록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독립출판사이자 예비사회적기업인 이야기너머에서 펴냈다. 평범하고 작은 이야기일수록 소중히 여기는 이 출판사는 보통 사람들이 쓰는 생애사, 자서전, 자전적 에세이 등과 공공기관 및 단체, 마을과 공동체 등 지역의 기록물들을 채집, 발굴해 이를 사회적 자산으로 삼아 소셜 아카이브(archive·저장소)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 회사는 대표가 장애인들을 돌보는 복지관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인의 가족들이 가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방법을 고민하는 데서 출발했다. 정흥모(65) 대표는 자신의 생애사를 쓰는 ‘기록’을 통해 ‘치유’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기록’과 ‘치유’가 이 회사를 만든 목표다. 역사라는 것이 언젠가부터 승자의 기록이 돼 버렸지만 보통 사람들의 기록을 많이 남겨 약자들의 시각에서 역사를 보다 풍부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지난 2013년 4∼7월 사이 12주 동안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중도장애인(비장애인이었다가 사고나 질병 등으로 장애를 얻게 된 경우)을 대상으로 생애사 쓰기 강좌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하지만 장애아동 어머니들의 마음을 열기는 쉽지 않았다. 말만 시켜도 눈물 바다였다. 일어나서 자기소개를 시작하며 “제 이름은요”라고 하면서도 눈물을 쏟았다. 아이 이름만 말해도 하염없이 울었다. 도무지 진척이 없을 것 같았지만 7회차에 접어들자 가족들은 울다가도 “울다가 웃으면 안 되는데” 하면서 함께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회의 편견 앞에서 상처받은 경험을 공개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 중에는 “이런 걸 왜 쓰냐”며 쓰던 책을 던지고 가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강좌 초기에는 20명이 신청했지만 8명만 남았다. 중도장애인 3명, 장애를 가진 자녀 부모가 5명이었다.
강좌가 끝나고 난 8월 한여름부터 1주일에 1번씩 자신의 삶에 대한 생애사 쓰기가 시작됐다. 글쓰기 교육을 따로 받지 않은 사람들이라 반신반의했지만, 연습장에 연필로 쓴 글에서도 감동적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 회사 직원들이 이들의 글을 일일이 컴퓨터로 활자화했다. 직원들은 “글솜씨가 뛰어난 글이 아닌데도 글을 읽으면 눈물을 흘렸다”면서 “나중에는 글을 받아 타자로 옮기려 사무실에 들어올 때마다 기도실에 들어가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글들을 페이스북에 띄웠더니 반응이 대단했고, 책으로 펴내기로 했다. 돈이 안 된다며 출판사에서 거절해서 직접 출판을 하기로 했다. 이 회사가 출판사로 변모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출판은 성공적이었다. 2013년 찍어낸 500권이 모두 팔려 다시 500권을 추가로 찍어냈고 현재도 대형 서점에서 팔리고 있다. 한 독자에게서 “출근 시간에 읽으려고 지하철을 탔는데 감동의 눈물과 콧물이 나와서 혼이 났다. 주의사항 없이 팔아도 되느냐”는 즐거운 항의도 받았다. 책을 쓴 장애인 가족들은 책 출간에 이어 총신대, 백석대, 대림대 등을 순회하면서 북 콘서트도 벌였다. 책 내용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발표하는 형식이다.
주현실 수리종합복지관 부장은 “자신의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지 못하던 이들이 마음을 열고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것은 물론 아이 때문에 자아를 잃었다가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 놀랍고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뜻밖의 여정’은 두 번째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장애인 당사자들 이야기 중심으로 꾸려질 계획이다. 사회복지사, 주민, 작가 등이 장애인들과 1대1로 동행하면서 생생한 일상을 담아낼 계획이다.
이 밖에도 6월 25일 한국전쟁 65주년을 앞두고 참전 용사 백대현(86) 씨가 쓴 ‘녹슨 파편의 사연들’이라는 책 또한 이야기너머가 출간했다. 이 책은 21세의 나이로 군에 입대한 지 40일, 자대에 배치받은 지 하루 만에 6·25가 발발하는 등 전장의 실상과 사연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육필 수기다.
많은 일을 하지만 직원은 총 4명이다. 정 대표와 반신마비 장애를 앓고 있는 진도훈(65) 씨 등 3명의 직원들은 일에 대한 열정으로 늘 뜨겁다. 북에디터 이혜정(여·34) 씨는 “오랜 세월 많은 일을 겪고 그 경험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좋은 소설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서 “다른 삶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 것인가, 나는 어떻게 살면 좋을까, 우리는 어떻게 대화하고 이해하며 이웃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는데 전 세대가 이런 고민을 해보며 소통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 고서정 기자 himsg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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