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이대론 안된다’… 영국인 특파원의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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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전망 불편한 희망 / 다니엘 튜더 지음, 송정화 옮김 / 문학동네

“제 말을 듣지 마세요.”

책의 목차를 지나 머리말에서 맞닥뜨린 첫 문장은 이렇다. 버젓이 책을 출간해놓고 듣지 말라니. 그에게 사정이 있다. 저자는 “한국 맥주는 맛이 없다”는 기사로 한국 맥주계와 국민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전 한국 특파원 다니엘 튜더(33)다. 그는 당시 경험 등을 통해 한국 사회가 서구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필요 이상의 관심을 기울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럽이나 미국인이 말하면 한국인의 반응은 꼭 두 가지라는 것까지 독파했다. “부끄럽다”란 사대주의적 반응 아니면, “무슨 근거로 한국인도 아닌 당신이…”란 국수주의적 반응. 그러니 그의 말은 제발 열린 자세로 걸러 들으라는 소리다.

제법이다. 이 정도면 한국인의 습성을 잘 파악하고 있다. 같은 얘기라도 외국인이 하면 더 뼈 아픈 맛이 있지 않은가. 이번 책은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한 것이다. ‘맛없는 맥주’처럼 익히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예리한 지적에 환부를 후벼 파이는 기분이다. “대다수 한국인은 정치를 내 통제권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란 문장부터 그렇다.

한국 정치는 이대로라면 가망이 없다는 게 튜더의 진단이다. 한국 안팎으로 반(反)민주적 성향이 증대되고 있지만 이에 저항할 만한 힘이나 역량, 자질을 가진 어떤 인물도, 어떤 조직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한국 정치판은 아직도 ‘쇼’가 통한다. 선거철이 되면 후보자들은 시장(市場)으로 향하고, 공장에 나가 노동자와 함께 땀을 흘린다. 이때 찍은 사진은 어김없이 국회의원 홈페이지 메인 화면을 장식한다. 효과는 웬만한 공약 하나보다 낫다. 튜더는 민주주의 국가는 시민의식 수준에 걸맞은 정치인을 갖게 마련인데, 한국인들은 쉽게 공약을 파기해버려도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 충성심을 지녔다고 말한다.

더욱이 이제 민주주의에 심드렁해진 시민들은 다소 권위주의적일지라도 안정되고 유능한 정부를 선호한다. 이 때문에 정치인은 감세와 공공지출 확대 경쟁에 몰두하고, 유권자는 선거에서 가장 후한 혜택을 약속하는 후보를 선택한다. 국가 경제는 파탄이 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를 달기만 할 뿐 영양가는 없는 ‘다이어트 콜라 민주주의’라 칭한다.

특히 튜더가 가장 많은 비중을 할애해 비판하는 대상은 ‘작동이 잘 안 되는’ 제1 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이다. 항상 이길 만한 선거 환경에서 새정치연합은 전략 부재와 정파 싸움, 이슈 선점 실패로 패배해왔다. 튜더는 2012년 총선 당시 새정치연합이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김용민 씨를 공천하면서 자멸했던 기억을 꺼내며, “유권자를 설득하는 일에 늘 젬병”이라고 말한다. ‘99% 대 1%’의 대결 구도에 대한 집착, 북한을 비판하지 못하는 당 분위기 등도 버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튜더는 결국 한국 정치가 살아나려면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각 지역 공동체에서 함께 모여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아이디어나 제안을 나누고, 이것이 풀뿌리 모임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책에는 새 정치세력이 한국의 미래를 위해 취해야 할 정책 이슈도 담겼다. 한국식 미텔슈탄트(중소기업) 활성화, 여성 인력 활용 등 고민해 볼 문제들이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