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42년 만에 개정된 한미원자력협정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전력이 19일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2호기 원자로를 성공적으로 설치하고 내부 기전공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바라카 원전은 2009년 한국이 첫 수출에 성공한 사례다. 지난 1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정식서명된 새 한미원자력협력협정은 이 같은 원전의 해외수출에 상당히 긍정적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전제공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윤병세(왼쪽) 외교부 장관과 어니스트 모니즈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15일 워싱턴DC 에너지부 본부에서 열린 한미원자력협력협정 서명식에서 각각 서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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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수출 때 美동의 한차례로… 新성장 엔진 발판
수입의존 癌진단용 동위원소 국내생산·수출길 터

한·미 양국이 지난 15일 새로운 원자력협력협정에 정식 서명했다. 4월 22일 서울에서 협상이 타결되고 가서명한 지 54일 만이다. 협정 본문도 이날 정식 서명과 함께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됐다. 특히 한국은 42년 만에 개정된 이번 협정에서 △원전 연료의 안정적 공급 △사용후 핵연료 관리 △원자력발전소 수출 증진 등 3대 중점 추진 분야에서 괄목한 만한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이 상대국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재활용) 권한을 명시적으로 금지한 ‘골드 스탠더드’를 적용받지 않은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기존 협정에 따른 미국의 사전동의 규정으로 완전히 묶여 있었던 저농축과 재활용 분야의 연구·활용에서 상당한 자율권을 얻게 됐다. 원전 산업에 강력한 파급 효과가 예상되는 가운데,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를 시작으로 본격화한 원전 해외 수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 협정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협정의 공식 명칭은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이다. 협정은 본문과 합의의사록 2개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총 44쪽에 달한다. 본문은 크게 한·미 간 원자력 협력의 큰 틀과 원칙을 규정한 전문과 구체사항을 담은 21개 조항으로 이뤄져 있다. 가장 관심이 높은 조항은 제8조(핵연료 공급)와 제11조(농축, 재처리 및 그 밖의 형상 또는 내용 변경)다. 2개의 합의의사록은 협정의 구체적 이행에 관한 합의의사록과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협의체로서 고위급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관한 합의의사록이다. 협정 유효기간은 20년이다.

2 1973년 기존 협정과 차이점은

일단 유효기간이 41년에서 20년으로 크게 단축됐다. 변화하는 상황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또 개정된 협정에는 한국 원전업계의 기술 발전을 고려, 기존에 없었던 항목이 대거 들어갔다. 새로운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에 관한 항목이 대표적이다.

기존 협정에는 아예 없었던 △수출입 인허가 신속화 규정 △20% 미만 저농축 권한 △한·미 고위급 위원회 신설·운영 △의료용 동위원소 생산 등이 신설됐다. 또 기술협력도 기존에는 정보교환에 국한됐다면, 이번 협정에서는 사용후 핵연료의 저장·수송·처분 등 분야가 확대됐다.

3 농축 부분 주요 내용은

한국은 이번 협정에서도 우라늄 농축 권한을 완전히 확보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에 대해서는 일정한 절차와 기준에 따라 향후 필요에 따라 농축을 추진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미국이 한국의 원전 가동을 위한 핵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도록 보장하는 내용이 담긴 규정도 협정에 새롭게 포함됐다. 또 지금까지 전량 수입에 의존해왔던 암 진단용 방사성동위원소를 국내에서 생산해 해외로 수출할 수 있다는 미국의 장기 동의도 확보했다. 방사성동위원소는 미국산 우라늄을 이용한다.

4 재활용 부분 주요 내용은

이르면 2016년부터 저장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도 해법을 마련했다. 일단 중간저장·재활용·영구처분·해외 위탁 재처리 등 정부가 추진하게 되는 어떤 방안에 대해서도 이를 구체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풀었다. 특히 가장 이목이 집중됐던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활용)은 일단 전반부 공정은 허가받았다. 조사후시험(사용후 핵연료의 특성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과 전해환원(사용후 핵연료에서 높은 열을 발생시키는 원소들을 제거하는 작업) 등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의 후반부 공정은 현재 진행 중인 한·미 공동연구에서 기술적 가능성이 확인되면 양국 간 협의를 통해 장기동의를 부여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5 원전 수출 부분 주요 내용은

협정에는 한·미 양국과 원자력 협정을 체결한 제3국에 대해 우리 원전 수출업계가 미국산 핵물질 및 장비·부품 등을 자유롭게 재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포괄적 장기동의가 담겼다. 또 수출입 인허가를 더욱 신속히 하도록 명시적으로 규정했다. 핵물질 관련 정보를 활발히 교류하는 방식으로 원전수출 투자·합작회사 설립을 촉진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이는 원전업계의 수출 경쟁력 증진으로 이어지면서 추후 관련 산업이 신성장 엔진으로 발돋움할 기회를 얻었다는 평가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원자력 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해 현재 세계 5위 원자력 강국이지만 이에 걸맞은 권리는 확보하지 못했었다. 한국형 원전과 스마트원전을 해외로 수출하는 우리로서는 이번 새 협정을 통해 세계 원자력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

특히 이번 개정을 통해 UAE 추가 수출과 제2·3의 다른 나라 원전수출을 위한 미국 기업과의 전략적 동반관계가 강화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지금까지는 미국 원전 설비 및 부품 업체인 웨스팅하우스와 협력했으나 이제부터는 양쪽 국가 간 협력으로 한 단계 높아졌다. 한국 원전업계로서는 수출이 한층 간편해지고 원활해졌으며 절차상 자유권은 강화된 셈이다.

6 한·미 간 후속조치 진행은

한미원자력협정의 후속조치를 논의하기 위해서 양국은 고위급위원회를 신설하고 실무그룹을 구성키로 합의했다. 미국 에너지부 부장관과 우리 외교부 차관이 공동 의장을 맡는 위원회는 매년 최소 연 1회 열린다. 당사자들이 교대로 개최하기로 했다. 장래 파이로프로세싱 기술 연구나 저농축 우라늄 추진에 관한 의견 조율도 이 고위급위원회를 통해 이뤄진다. 차관급 고위급위원회 설치는 미국이 다른 국가와 맺은 원자력협정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요소다. 한미원자력협정에서 최초로 개설된 것이다. 고위급위원회 산하에는 △사용후 핵연료 관리 △원전 연료의 안정적 공급 △원전 수출 증진 △핵 안보 등 4개 분야의 실무그룹이 설치돼 협정 전반에 대해 상시 논의를 하게 된다.

7 후속조치 이행 누가 전담하나

현 정부에 원자력협정 이행을 전담할 공식 기구는 없다. 그동안 외교부를 주축으로 관계부처 직원들이 참여한 태스크포스(TF)가 미국과의 원자력협정 협상을 진행해왔지만 향후 20년에 걸친 협정 이행을 위해서는 별도의 조직이 필요하다. 오는 8월 TF 운영기간 종료를 앞두고 있는데도 별도 조직의 시급성에 비춰 조직의 신설 준비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외교부는 국장급을 책임자로 하는 ‘원자력비확산국’(가칭) 신설을 검토 중이나 사정은 여의치 않다. 새로운 국이 신설될 경우 한·미원자력협정 등 양자 협력을 담당하는 과와 다자 협력을 총괄하는 과가 설치될 전망이다.

또 현재 국제기구국 소속으로 핵의 평화적 이용과 비확산 문제를 담당하는 군축비확산과의 합류가 예상된다. 협정이행과 별개로 국제사회에서 평화적 핵 이용에 대한 한국의 의지를 인정받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점에서다. 원자력비확산국이 만들어지면 한·미가 협정에서 신설키로 한 고위급위원회의 실무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8 원자력협정은 언제 발효되나

발효되는 데 남은 걸림돌은 없다. 이번 정식 서명으로 양국이 행정부 차원의 절차는 모두 마무리 지었다.

미국 의회의 심의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이르면 연말, 늦어도 내년 초 협정이 발효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의회로 넘겨진 협정안은 상·하원의 심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90일 연속 회기 동안 반대 결의안이 나오지 않으면 의회를 통과한 것으로 간주된다. 양국에서 모든 국내 절차가 완료되면 상대국에게 이를 통보하는 것으로 협정은 발효된다. 기존 만료시한은 내년 3월이지만 이와 관계없이 양측의 모든 국내 절차가 끝나면 그 이전이라도 발효된다.

9 새 협정에 대한 반대는 없나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 등 야당 정치권과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협정에 비판적이다. 반대 이유는 제각각 다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협정안에 미진한 부분이 많고 국민적인 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나 공식적으로 국회 비준을 요구한 바는 없다. 지난 4월 협상 타결 때 우윤근 당시 원내대표는 “핵심 쟁점인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재활용에서 확실한 자주권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정의당은 국회 비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제남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 보고와 검증을 거친 후 비준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시민단체는 “방사능 오염을 확대하고 핵확산으로 인해 평화를 위협한다”는 점에서 핵 재처리 연구 자체에 반대다. 환경운동연합은 “위험한 기술, 죽음의 기술 재처리와 고속로를 위해서 지금도 한 해 수천억 원의 세금을 쏟아 붓고 있다”는 논평을 낸 바 있다.

10 국회 비준은 필요 없나

정부는 법제처가 새로운 한미원자력협정에 대해 국회 비준이 필요 없다는 유권해석을 외교부에 전달함에 따라 별도의 국회 승인절차가 필요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법제처는 개정 협정이 국회가 비준동의권을 가진다고 규정한 헌법 60조의 대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헌법 60조에 따르면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이나, 국가·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법령 개정 등이 필요한 조약 등은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도록 돼 있다.

정부는 이뿐만 아니라 기존 한미원자력협정을 포함해 우리나라가 체결한 29개 원전협정 가운데 국회 비준을 거친 협정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새 원자력협정도 마찬가지라는 입장이다. 다만 법제처의 유권해석에도 국회 보고와 비준 여부를 놓고 국회에서 논란이 빚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신보영·인지현·박민철 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