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굴욕적인 현대인 … ‘희생양’ 찾다보니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 메두사는 가부장제가 힘을 얻을수록 여신으로서 힘을 잃다 마침내 괴물로 형상화돼 추문거리가 된다. 사진은 바티칸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메두사 목을 자른 페르세우스 대리석상. 문화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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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가 어쨌다구? / 윤보라·임옥희·정희진·시우·루인·나라 지음 / 현실문화

지난 1월 대한민국의 열여덟 소년이 ‘남성이 차별받는 시대. 페미니스트를 증오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이슬람국가(IS)를 향해 국경을 넘었다. 사람들은 테러조직에 가담할 만큼 싫은 페미니스트는 무엇인지 물었고, 논의는 페미니즘의 문제, 페미니즘의 해악으로 흘러갔다. 한 칼럼니스트는 원래 의미를 잃고 지배구조 대신 남성을 공격하는 ‘무뇌아적 페미니즘’을 문제로 지목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즈음부터 ‘여성 혐오’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을 해석해내는 중요 프레임으로 등장했다.

여성문화연구가, 인권운동가 등 여섯 명은 이 문제적 시기를 놓치지 않았다. ‘여성 혐오’를 분석하고, 이면과 배경을 살펴 책으로 냈다. 문제의식의 타이밍도 타이밍이려니와 ‘여성 혐오’라는 젠더에 한정된 개념을 넘어 이를 매개로 한국 사회 ‘혐오감’의 정체와 메커니즘을 살폈다는 점에서 책은 주목된다. ‘혐오감’이라는 괴물의 몸뚱이를 드러내겠다는 시도다.

“공포, 분노, 염려와 피로, 애도와 불안을 넘어 이제 혐오의 시대다.” 책의 진단이다. 일간베스트(일베)의 혐오, 인터넷을 중심으로 번지는 적대적 공격과 악플···, 조롱, 멸시, 차별, 비난을 먹어치우는 혐오감은 개인을 넘어 집단적 행동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이민자에 대한 혐오감에서 싹튼 극우파 문제로 유럽이 시끄러울 때마다 우리는 비교적 ‘혐오감 안전지대’로 인식해온 관념을 이제 버려야 할 때가 됐다.

현재 우리 사회의 혐오감 순위를 매겨보면 여성 혐오가 1순위다. 온라인 문화생태계와 젠더 문제를 연구해온 윤보라에 따르면 그 시발점은 2006년 된장녀 담론, 더 거슬러 올라가며 1999년 군가산점 폐지 논란이다. 그러다 최근 2, 3년 사이 여성 혐오로 명명된 사건과 이를 둘러싼 커뮤니케이션 총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 같은 여성 혐오의 중심엔 비판받아 마땅한 ‘나쁜 여자’가 있다. 이기적이고 몰염치하며, 무능하고 한심하며, 공동체 의식이 부재한 데다 소비적이고 성적으로 방종한 여자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여성을 성녀와 창녀, 착한 여자와 나쁜 여자로 나눠 분리했다면 지금은 모든 여성을 ‘나쁜 여자’ 거푸집에 밀어넣는다. 된장녀, 무개념녀, 개똥녀 등 사건과 사건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과장, 왜곡, 조작을 통해 나쁜 여자로 만들어진다. 이에 여성의 개인적 고통은 논외가 되고 88만 원 세대로 불리며 고통받는 청년 세대는 온전히 남성을 지칭하게 된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런다면 여성 혐오는 왜, 어떻게 작동하나. 이는 혐오감 작동의 일반 기제와 같다. △추악한 감정의 유익화 △굴욕적 일상과 자기분열 △주목 경제 △험담, 추문, 악플, 헛소문이 빛의 속도로 무한증식하는 인터넷 등 다양한 요소들이 뒤섞인 결과다. 나쁜 감정의 유익화는 모든 것이 경제적 등가로 교환되고 노골적 이해만 남게 되면서 옛 기준에서는 추악한 감정들이 긴요한 감정으로 역전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뻔뻔한 이익 추구, 기회주의, 냉소주의 등은 성공을 위한 키워드로 대접받고 있다. 이틈에 추악한 혐오감도 제자리를 만들었다. 다양한 정체성을 갖는 개인들의 자기분열도 이유다. 굴욕적이고 비참한 일상을 견디기 위해 밤에는 자기혐오, 비루함, 억울함, 불만, 짜증을 누군가에게 전이시키고 다음 날 아침엔 멀쩡하게 나가는 것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관심 프레임’ 안에 들어와야 비로소 존재감을 획득할 수 있는 현실도 극악한 발언을 해서라도 주목받겠다는 ‘주체의 열정’을 자극한다. 여기에 혐오 담론들은 인터넷에서 유머와 ‘드립’이라는 막강하고 안전한 방패 덕분에, 그 병리성을 숨길 수 있다고 분석한다.

다만 책은 혐오감이 혐오 대상인 집단의 힘이 사회적으로 가시화될 때 나타난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여성 혐오만 해도 여성의 힘이자라 전통적 역할을 거부하고, 적극적 자유를 원하면서 젠더 무의식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깊은 혐오는 깊은 공포와 매혹의 또 다른 표현인 것이다.

“주인의 연장으로는 주인의 집을 허물 수 없다. 분노한다면 벌거벗은 말들이 넘쳐나는 이 세계를 허물기 위해 자기만의 연장을 갖춰야 한다.”

우리 주변의 구체적인 사건을 예로 들며 혐오감의 정체를 쉽게 풀어낸 책은 흑인 인권운동가 오드리 로드의 말을 인용하며 마무리 한다. 약자를 속죄양으로 삼는 정치를 비판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혐오에 대항하는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들이 내린 결론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