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박수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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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 논설위원

한국의 크고 작은 산과 강변에 가장 많이 널려 있는 화강암을 흔히 쑥돌이라고도 일컫는다. 쑥이 지닌 검푸른 색이 짙게, 또는 옅게 많이 박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매우 단단하기도 해서 한국인의 심성이나 정서에도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돌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리는 일에 평생을 바친 예술가’ ‘한국의 밀레’ 등으로 추앙되는 박수근(1914∼1965) 화백의 그림 거의 모두 쑥돌의 우툴두툴한 질감이 느껴지는 마티에르 효과가 두드러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박완서(1931∼2011)의 1970년 장편소설 데뷔작 ‘나목(裸木)’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도 알려진 걸작을 비롯, 박 화백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나목도 마찬가지다. 농업과 사업을 병행했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프랑스 화가인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晩鐘)’을 접한 것을 계기로 밀레를 잇는 화가를 꿈꾸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친의 사업 실패로 가세(家勢)가 급격히 기울어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그림을 독학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가슴에 새긴 ‘산골의 미(美)’를 ‘빨래터’ ‘나무와 두 여인’ ‘나물 캐는 아낙’ ‘절구질하는 여인’ ‘우물가’ ‘골목 안’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걸작에 담아낸 배경이기도 하다. 박 화백 고향인 강원도 양구의 교육지원청 뒤에 현재도 서 있는 수령 300여 년의 느릅나무 두 그루가 작품 배경에 더러 등장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올해가 박 화백 타계 50주기다. 그의 예술과 휴머니즘을 아울러 기리기 위해 양구군이 박 화백 생가 터에 2002년 설립·개관한 박수근미술관은 ‘뿌리깊은 나무 박수근,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제목의 기획 전시회를 지난 5월 시작해 오는 8월 30일까지 이어간다. 외벽을 화강석 조약돌로 쌓으면서 나지막하게 지어 더 아름다운 박수근미술관을 비롯해 인근의 논 한복판 위에 세운 박수근파빌리온 등에서 그의 작품 다수와 함께 삶의 이런저런 자취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적한 산기슭의 미술관 뒤뜰에 두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뻐꾸기 우는 소리를 듣고 있는 듯한 그의 청동 좌상 등도 그의 걸작들과 함께 둘러보면서, 박 화백이 ‘시간의 한계를 넘어선 화가’로 불리는 이유를 되새겨 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