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닭 키우고 과수원 운영하며… 형편 어려운 제자들 도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0일 광주 남구 백운동의 한 마을학교에서 홍인표 교사가 학생들에게 독서지도를 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퇴직뒤 마을학교 운영 홍인표 교사

“1970년대만 해도 대부분 부모는 끼니 걱정에 자식 공부시키는 것을 사치라고 느꼈지요. 제가 가르치는 아이 중에도 초등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머슴, 식모, 식당 종업원, 공장 노동자로 돈벌이를 나서는 경우가 수두룩했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들어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닭을 키우고 나무를 심었지요. 닭이 낳은 달걀을, 나무에 영근 열매를 내다 팔아서 아이들의 학비를 마련하고 중학교 진학도 시켰습니다.”

지난 10일 광주 남구 백운동 한 마을학교에서 만난 홍인표(67) 교사는 지난 1969년 교직에 입문해 2008년 은퇴한 퇴직 교사다. 그는 39년간 전라남도의 장흥 관산북초교, 나주 중앙초교, 목포 대성초교, 장흥초교 등에서 근무하면서 열정과 헌신으로 학생들을 가르친 교사로 광주·전남 일대에서 소문이 자자하다.

홍 교사의 첫 부임지는 면사무소에서 4km나 떨어진 전남 장흥 오지의 관산북초교였다. 산골 학교를 꺼리는 교사들은 부임 후 2년이 채 안 돼서 서둘러 다른 학교로 떠났지만 홍 교사는 6년 넘게 학교에 재직하며 학생들은 물론, 학교와 마을의 변화를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다. 그는 “집안일을 돕느라 밥 먹듯이 결석을 하고, 형편이 더 나쁜 경우 돈을 벌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을 두고 나만 살겠다고 도시로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고 6년간 학교를 지킨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집안 형편 탓에 학교 대신 일터로 향해야 했던 제자들을 학교에 남길 방법을 궁리하던 끝에 닭을 기르기로 했다. 홍 교사는 부화기에서 갓 나온 병아리 700마리를 사서 어미 닭이 될 때까지 정성으로 키웠다. 밤이면 병아리가 얼어 죽을세라 학교 관사에 병아리들을 몰아넣고 불을 땠다. 사료비를 아끼기 위해 아카시아 잎을 뜯으러 다니기도 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병아리를 키우기 위해 난생 처음 축산 관련 서적도 보고, 병아리가 병들어 죽지나 않을까 내 손으로 직접 예방접종도 했다”고 자랑했다.

그는 정성으로 58일간 키운 닭을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그는 “전교생을 두 줄로 세워놓고 닭을 나눠주던 순간 아이들의 환한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며 미소 지었다. 학생들이 집으로 가져간 닭들은 10원짜리 달걀을 하루에 한 알씩 낳았고, 학생들은 달걀을 팔아 300원 상당의 한 달치 육성회비를 해결했다.

닭을 키운 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던 홍 교사는 학교 주변 버려진 땅들에 유자나무와 밤나무를 수십만 그루 심었다. 유자나무에서 자란 유자를 팔아 학생들의 수학여행비를 마련했다. 유자를 판 돈으로 학교의 열악한 시설을 고치기도 했다. 성장이 느린 밤나무는 홍 교사가 학교를 떠난 후 학생들의 학비를 마련하는 데 쓰이기를 바라며 심었다.

홍 교사는 가난 속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지내는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줘야겠다는 생각에 핸드볼팀과 밴드부도 만들었다. 그는 “도시 아이들도 접하기 힘든 핸드볼 공과 진귀한 악기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게 되면서 아이들은 점차 자신감을 얻어갔다”고 말했다.

학생들과 마을 사람들이 기쁨을 누리는 동안 홍 교사는 닭과 유실수를 사서 기르고, 밴드부 악기를 마련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 가며 지원금을 모으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모자란 돈은 사비를 털어 마련했다. 동료 교사로서 뒤에서 그를 묵묵히 지지해준 아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같은 홍 교사의 남다른 열정 뒤에는 남모를 아픔이 있었다. 그는 “채소 장사를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라느라 수학여행 한 번 가보지 못했는데, 수학여행을 못 가고 학교에 남아있으면 화장실 청소를 시켰다”며 “그때의 기억이 두고두고 아프고 쓰렸다”고 말했다. 그는 가난 때문에 자신이 받아야 했던 상처를 제자들은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홍 교사가 정성으로 가르친 제자들은 다행히 변호사, 의사, 교수, 가수 등 저마다 원하던 직업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했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역 옆 중국집 종업원으로 팔려가다시피 떠난 제자가 있었다”며 “눈물을 삼키며 아이를 보내며 잉크, 펜, 영어사전을 사서 쥐여주며 ‘어떻게 해서든지 공부를 해라’고 당부했는데 최근 대학교에서 요리를 가르치는 교수가 돼 나타나 내게 큰절을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홍 교사의 제자들은 졸업 30주년을 맞아 올초 홍 교사와 그의 아내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 초대해 사은회를 열었다. 사은회에는 홍 교사가 가르쳤던 제자 64명 중 54명이 참석했다.

홍 교사는 은퇴한 뒤에도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원에 다니기 힘든 학생들을 방과 후에 가르치는 마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마을학교에서 홍 교사는 학생들에게 독서지도와 인성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내가 가진 재주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뿐이라 평생 아이들 곁에서 교육하고 싶다”고 말했다.

홍 교사는 후배 교사들에게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는 교사가 돼라”며 “교사는 항상 제자의 모범이 돼야 한다”고 당부의 말을 남겼다.

광주 = 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