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코리아 엑소더스’ 심상찮은 조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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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직 / 편집국 부국장

‘제6감(感)’이라는 게 있다. 시각·청각·미각·후각·촉각 등 기존의 5감각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특수한 인지기능을 말한다. 이것은 동물에게서 확연히 관찰된다. 특히 대지진 등 자연재해를 앞두고 두꺼비나 뱀, 쥐, 까마귀 등 동물들이 이상행동을 보이는 사례가 많이 관찰돼 중국과 일본 등에선 이 같은 동물들의 이상행동을 지진 예보에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성격은 다르지만 돈의 이상흐름은 경제위기의 사전 징후인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 국내 주식시장에서의 외국인 자금흐름이 예사롭지 않다. 외국인들은 무려 27거래일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국 주식을 순매도하고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장 기록이다. 최근 석 달간 외국인 투자자들이 팔아치운 국내 주식과 채권 금액은 10조 원이 넘는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경제 회생을 명분으로 3조 달러 이상을 쏟아부으며 초저금리를 유지해 왔던 미국이 7년 만에 처음으로 금리 인상을 통해 긴축에 나설 채비를 하자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금융시장의 ‘셀 코리아’와 더불어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하는 건 가속화하는 실물분야에서의 ‘코리아 엑소더스(대탈출)’ 조짐이다. 2000년 이후 우리나라의 해외직접투자 유입(In Flow)이 유출(Out Flow)을 초과해 순유입(Net Flow)이 플러스를 기록했던 해는 단 세 해(2000·2001·2004년)에 불과하다. 최근 10년간 우리나라로 들어온 외국인 투자가 1000억 달러에 불과한데 밖으로 나간 투자는 3000억 달러에 이른다. 얼마나 우리나라가 기업 하기 어려운 환경인지 알 수 있다. 면적이 서울과 비슷한 정도인 싱가포르에 2005년 이후 유입된 해외 직접투자 규모는 같은 기간 한국의 5배에 달한다. 17%에 불과한 법인세를 앞세워 일군 이 같은 해외직접투자 유입은 싱가포르의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대로 올라서는 데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외국인이 한국에 대한 직접투자를 주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기업들이 한국을 피해 투자 대상지를 해외에서 찾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과도한 규제다.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수도권 규제가 지속되면서 최근 6년간 해외로 공장을 이전한 수도권 기업(28개사)이 지방으로 공장을 이전한 기업(10개사)의 2.8배에 달했다. 수도권 규제 사슬을 피해 기업들이 지방으로 옮긴 게 아니라 투자 여건이 더 좋은 해외로 빠져나간 것이다. 한국 노동시장의 고비용 구조 역시 외국인 직접투자를 막고 국내 기업의 ‘탈한국’을 부추기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캐나다 연구기관인 프레이저 인스티튜트가 채용·해고 규제, 채용비용, 해고비용 등 6개 항목을 바탕으로 평가한 각국의 ‘노동시장 규제 관련 자유지수’를 보면 한국 순위는 152개국 가운데 133위다. 앙골라, 짐바브웨 등 아프리카 저개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에 투자하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금융·실물부문 모두에서 글로벌 자금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경제가 온전한 성장을 지속하는 건 불가능하다. 제2의 경제위기 가능성이 끊이지 않고 제기되는 이유다. 정부는 말로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 게 아니라 오는 10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과 달러스와프협정을 체결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낮은 법인세와 저임금, 유연한 노동시장을 내세워 국내외 투자기업들을 유혹하고 있는 경쟁국에 맞서 우리만의 특장점을 어필할 수 있도록 국내 투자환경을 긴급히 재점검해야 한다.

현재 추진 중인 노동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풍랑에 흔들리는 한국호(號)를 앞에 두고 여·야, 노·사, 좌·우 구분이 있을 수 없다. 탈출하려는 자금의 물꼬를 돌리고,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난 10일부터 시작된 국정감사는 기업감사로 변질돼 또다시 대기업 때리기에 안달이다. 야당 대표는 법인세 인상을 정부 예산안 통과에 연계시키겠다고 공언하고 있고, 국회 상임위원회 곳곳에서 기업인을 불러 “네 죄를 네가 알렷다”는 식의 호통과 으름장이 벌어질 태세다. 온 나라가 마치 외국 기업의 투자를 막고 국내 기업을 해외로 내몰기 위해 작정이라도 한 듯하다. 기업들의 목줄을 죄며 경제 회생과 일자리, 복지를 외치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