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신민당 상임고문 자격으로 1986년 3월 23일 개헌추진본부 부산지부 결성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김천길 전 AP기자 제공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74년 12월 신민당 총재 시절 3선 개헌 반대를 주장하며 철야 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모습. 김천길 전 AP기자 제공
여론보다 한 발짝 빠르게 행동
승부사적 ‘直線 리더십’ 소유
‘영원한 적군·아군 없다’ 신념
노선·이념보다는 능력 중시해
이인제 · 이회창 · 이홍구 등
복수의 차기 대권 후보 키워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리더십은 ‘곡선’이 아니라 ‘직선’이다. 그는 직관에 의해 판단한 것을 여론이나 경쟁자보다 한 발짝 빠르게 행동에 옮기는 승부사적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한 번 쓴 사람을 신뢰하는 용인술, 복수의 후계그룹을 키우고 경쟁시키는 권력관리, 에둘러가지 않고 정면돌파하는 위기관리 능력이 돋보였다. 평시보다는 난세에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형이라는 점에서 ‘거산’이란 호나 ‘대도무문’이라는 사자성어가 어울리는 리더였다.
그의 두드러진 리더십은 용인술에서 정점을 이뤘다. 김 전 대통령은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평생의 신조대로 인재 발탁을 중시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그의 단골 어록이었다. 일단 사람을 쓰면 신뢰했고 많은 것을 위임했다. 필요하면 적도 스카우트했고, 진심을 먼저 보이고 아낌없이 베풀었다.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는 신념을 가졌고, 작은 인연이 모여 큰 인연을 만든다는 것과 리더의 믿음이 충성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믿었다. 그는 민주화운동을 공동경험으로 하는 인적 풀을 인사의 기본 토대로 삼았지만 과거의 노선과 이념적 정향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의 능력을 중시했다. 다만 명백한 하자가 있거나 민심이 돌아서면 언제 신뢰를 했느냐는 듯 전광석화같이 교체를 단행했다. 그러나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차남 김현철을 포함한 비선 조직이 인사에 개입하면서 이 같은 용인술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고 국정 운영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김 전 대통령은 권력에 대한 의지는 생래적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대단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는 글귀를 책상머리에 걸어놓고 50년 만에 인생의 목표(대통령 당선)를 달성한 것만으로도 그 집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최연소 국회 입성과 최연소 원내총무 등 각종 최연소 기록에 이은 ‘40대 기수론’ 주창, 전두환 군사정권 당시 단행했던 23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 등 온몸을 불사른 민주화 투쟁, 과거의 정적들과 치러낸 3당 합당 등이 그의 일도양단하는 승부사적 리더십의 실증적 사례들이다.
특히 그는 통상 2인자를 인정하지 않거나 견제했던 역대 권력자들과는 달리 차기 대권 후보를 복수로 키우고 이를 통해 오히려 레임덕 방지를 꾀하는, 업그레이드된 권력관리 방식을 즐겼다. ‘깜짝 놀랄만한 인물’이란 말로 이인제 노동부 장관을 일순간에 여권의 차기 대권후보로 부상시키는가 하면 이회창·이홍구·이수성 등을 국무총리에 임명하면서 대권 후보군을 넓혀갔다.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과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도 대권 후보 반열에 올랐고 결국 두 사람은 실제로 대통령이 됐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위기관리 능력에서도 당대에 그를 따를 이가 없었다. 고비마다 승부수를 날리는 특유의 감각과 돌파력이 위기관리의 수단들이다. 그는 ‘감(感)의 정치인’이었다. 필요할 때에는 ‘칩거’하다가도 이내 빈틈을 헤집고 역공을 취해 수세를 열세로 만드는 동물적 감각의 소유자다. 정치게임에는 고도로 능했던 그였지만 국가경영에는 취약함을 보이기도 했다.
허민 선임기자 minski@munhwa.com
;){kind=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