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경제 바람개비’ 달려서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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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직 / 편집국 부국장

2016년 첫 달을 보내는 경제계가 좌불안석이다. 연초부터 내우외환의 악재가 겹치다 보니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재계도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눈치만 살피고 있다. 통상 한 해를 시작하는 1월이면 지난해 실적을 토대로 새 목표를 세우고 경영계획을 점검하느라 분주한데 2016년 1월은 황량한 침묵만 흐르고 있다. 제조업체 가운데 44%는 아직 새해 경영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하니(대한상공회의소 조사 결과) 재계의 안타까운 현실을 절감케 한다.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위험요인을 살피고 경계하는 건 기업경영의 기본이다. 그러나 한국 경제를 둘러싼 비관론이 경제계 전반을 너무 압도한다면 문제다.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세계 40개국의 체감경기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한국에서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83%로, 여섯째로 높았다. 이 비율은 140%에 달하는 물가폭등 속에 지난해 마이너스(-)10%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베네수엘라와 같은 수준이다. 경제비관론이 확산되면 소비자들은 불안한 미래에 지레 겁에 질려 지갑을 닫아버리고, 기업들은 투자와 인력 채용을 주저하게 된다. 이는 곧 성장률을 끌어내리면서 경제 비관론을 더욱 확산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과연 2016년의 한국 경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불안불안하고 향후 전망은 캄캄하기만 한 것일까. 주관적 평가를 배제하고 객관적 비교 결과를 들여다보자. 세계적인 경제주간지인 영국 이코노미스트 맨 마지막 페이지에는 항상 42개 주요 국가의 경제통계표가 실린다. 최신호 통계표를 보면 한국은 ‘최근 1년간 외환수지’가 1049억 달러로 42개국 중 4위다. 한국의 2015년 재정흑자율은 0.3%로 노르웨이·독일에 이어 3위다. 실업률은 3.2%로 네 번째로 낮다. 통계 지표와 실물경제의 괴리를 감안해도 한국 경제가 다른 주요국에 비해 결코 취약한 건 아니다. 지난해 연간 수출이 7.9% 감소하자 ‘수출위기론’이 확산됐지만 정작 지난해 한국의 수출 순위는 프랑스를 제치고 한 단계 상승해 6위로 올라섰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경쟁국들의 수출 감소 폭이 더 컸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탄탄하다고 강변하자는 게 아니다. 많은 불안요인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글로벌 경제가 함께 견뎌야 하는 고통인 만큼 한국 경제만 지나치게 자학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 비관론의 골이 유난히 깊은 원인은 복합적일 것이다. 좌충우돌 정책과 말만 번지르르한 규제개혁으로 경제주체들의 불신을 자초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건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걸림돌’로 작용하는 한국 정치에 대한 절망이다. 국회선진화법을 무기 삼아 경제활성화법의 국회 통과를 막고 있는 야당을 상대로 법 통과의 절박함을 호소하는 과정에서 경제위기론이 과도하게 증폭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과도한 경제 위기의식이 투자심리와 실물경제를 위축시켜 실제로 경제를 더 큰 위기상황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자기실현적 위기(self-fulfilling crisis)’가 그것이다. 국회의 갑(甲)질에 막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국민의 경제고통이 커질수록 득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 듯한 야당의 개과천선만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뿐이다. 경제 비관론에 휩싸여 위기극복의 자신감마저 잃어버려선 안 된다. 재계도 이번 기회에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경제에도 춘하추동이 있고, 엄동설한을 어떻게 견디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분명히 갈리는 건 역사의 교훈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해서 투자를 축소하고, 마른 수건 쥐어짜듯 비용을 줄이는 감량경영 일변도가 능사는 아니다.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는 데’ 경영목표를 둔 기업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위기 이후의 그 무엇’을 노리는 기업이라면 달라야 한다. 지긋지긋한 ‘만년 2위’ ‘만년 하위그룹’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싶다면, 신경 쓰이는 2위 업체와의 격차를 확 벌려놓고 싶다면 ‘위기 이후’를 대비하는 통 큰 전략이 필요하다. 역경과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 게 진정한 기업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