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유행病 ‘막말 정치’의 피해자는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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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영 / 서강대 교수·국제정치학

한 나라가 안정을 유지하려면 질서가 잘 확립돼야 한다. 질서는 구성원들의 공존 공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확고한 질서는 구성원들의 합리적 가치들이 한 방향으로 모아질 때 가능하며 정신적·물질적 안정을 담보해준다. 질서가 깨지면 자신의 삶에 대해 불안해한다. 우리는 지난 4·13 총선 결과 국내 정치질서의 변화가 불가피해졌고, 필리핀과 미국 대통령 선거 이슈로부터 제기되는 ‘막말’ 때문에 한반도 안보 환경의 약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국내질서의 변화는 스스로 잘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고, 국제질서의 변화는 정확한 원인과 배경, 나아가 대안을 다각도로 모색해야 한다.

필리핀과 미국 대선 외에도 브라질과 오스트리아에서 극우정당 후보들이 유권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 대선의 경우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후보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트럼프는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를 강조한 전통적 공화당 노선과 달리 ‘위대한 미국의 재건’을 토대로 신(新)고립주의를 표방한다. 동시에 트럼프 후보의 막말은 공화당 지도부와 달리 공화당 당원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은 결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힐러리의 당선 가능성이 크지만, 미국 대선에서 언급되는 한·미 관계에 대한 내용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는 함의(含意)를 정리해 본다.

우선, 21세기 초반의 시대적 특징은 가치를 중심으로 한 이념의 쇠퇴와 세계화의 부작용이다. 탈냉전 직후 시대적 특징으로 대두된 세계화는 신자유주의를 앞세우면서 무한경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양극화, 장기적 경기침체로 인한 실업 문제와 중산층이 붕괴되면서 안정적인 질서 유지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는 기성 정치 체제에 대한 비판과 대중의 불만으로 이어졌고, 안정을 담보하는 해결책 마련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결국, 민중영합주의를 중시하는 정치인들과 막말들이 도처에서 나타나게 됐다.

다음으로, 막말이나 궤변에는 가치 문제가 결여돼 있다. 걱정거리가 많을 경우 궤변을 앞세우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는 정치 선동가들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막말을 앞세우는 선동정치가 유권자들의 인기를 얻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의 불안과 기존 질서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대변해주기 때문이다. 막말은 유권자들의 불안을 일시나마 씻어주고 어루만져주는 카타르시스 기능을 한다. 하지만 선동이나 막말 정치는 정치적 안정성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진다. 감성을 자극하는 선동은 몰상식의 결과로 이어지고,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끝으로, 상황적 이익을 중시하는 미국은 이전보다 더 많은 책임 분담과 비용(費用)을 우리에게 요구할 것이다. 트럼프는 기존 한·미 관계의 원칙과 질서에 어긋나는 자극적 발언을 주저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이러한 언급은 미국의 대(對)아시아 및 한국에 대한 기본 인식이 변하고 있으며, 향후 한반도 안보 환경과 질서의 변화를 예고하는 전주곡이다.

미국 사회에서 한국을 보는 눈이 바뀌고 있다. 따라서 주한 미군의 주둔비 문제는 양국의 끊임없는 쟁점이 될 수 있다. 또, 통상 관계에서도 미국은 자국의 상황을 최우선시하는 정책을 취할 것이다. 물론 상황적 이익의 관점에서 미국의 주한 미군에 의한 편익(便益)을 외면하거나 한국 정부에 대해 스스로 방위 문제를 책임질 것을 강요할 전망은 크지 않다. 지혜를 모으고 더 한층 단합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