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프랑스에서 제대로 봐야 할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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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국제부장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 중인 프랑스는 현재 국가 마비라고 할 정도의 혼란에 빠져 있다. 고속철도 테제베(TGV)는 운행이 중단됐고, 파리 시내버스와 지하철도 파업에 돌입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자신이 소속한 사회당의 지지 기반이기도 한 노조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는 “프랑스의 미래를 위해선 반드시 노동법이 개정돼야 한다”면서 ‘대통령 긴급명령권’을 발동해 의회 표결 없이 노동법 개정을 강행했다. 좌파 친구들조차 반발하자 “인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통령보다 비록 인기는 없더라도 개혁을 추진한 대통령으로 남겠다” “나는 프랑스가 대통령에게 바라는 일을 할 것”이라며 결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도 노동개혁을 추진했으나 관련 법안들은 제19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모두 폐기됐고, 성과연봉제 등으로 우회하려 하지만 만만치 않다. 올랑드 대통령의 어려움을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임기에 쫓기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것은 ‘북한 불인정’ 정책이다. 유럽연합(EU) 국가 중 지금도 북한과 수교하지 않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와 리투아니아뿐이다. 지난 2000년 남북 정상회담 후 김대중 대통령이 세계 각국에 햇볕정책을 제창하며 수교를 권장했을 때 프랑스는 북한 인권 문제를 지적하며 거부했다. 김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전후해, EU 국가들이 앞다퉈 대북 수교에 나설 때도 ‘선(先)인권 개선’ 원칙을 견지했다. 우파 정권이나 좌파 정권이나 흔들림이 없었다. 16년이 흘러 최근 EU는 대북 포용정책을 접고 북한 선박 입항 금지, 북한 국적기의 EU 이착륙 및 영공통과금지 등 강력한 제재에 앞장서고 있다. 박 대통령은 개성공단 철수 등 대북 봉쇄 정책을 펼치고 있다. 모든 나라가 프랑스처럼 북한에 핵 폐기와 함께 인권 개선까지 집요하게 요구했더라면 북한은 지금 어떻게 돼 있을까.

이번 방문이 세 번째라는 점이 보여주듯 박 대통령의 프랑스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다. 취임 첫해인 2013년 11월 영국행에 앞서 프랑스에 들른 데 이어,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 직후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참석을 위해 또 찾았다. 이번은 양국 수교 130주년 기념 국빈 방문이다. 3일 양국 정상회담에 이어 파리 6대학에서 명예 이학박사 학위를 받고, 42년 전 유학의 추억이 어린 그르노블시도 찾는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미국을 다섯 차례, 중국과 프랑스를 각각 세 차례씩 방문했다. 미국과 중국을 자주 찾은 것은 당연하지만, 프랑스는 이례적이다. 이번에도 화급한 중대 현안은 없다.

박 대통령이 아프리카와 프랑스를 방문하는 기간(5월 25일∼6월 5일)은 한반도 및 동북아 외교에서 상당히 중요한 시기였다. 일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의 주요 의제가 북핵 문제였고, 2일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제2270호 이행보고서 제출 시한이었다. 미국 재무부는 1일 북한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해 국제 금융거래의 전면 봉쇄에 나섰다. 때맞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 리수용 등 대표단을 만났고, 북한은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했다. 대통령이 반드시 국내에 있거나 G7에 옵서버로라도 참석해야 북핵 외교가 제대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 기간의 아프리카·프랑스 방문은 한국 외교의 초점을 흐리기에 충분하다. 이런 잃어버린 기회비용만큼 박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많은 것을 얻어야 한다.

프랑스 대선이 내년 4월 실시된다. 이를 앞둔 올랑드 대통령을 보면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떠오른다. 슈뢰더는 2003년 노동개혁을 밀어붙여 독일경제 회생의 길을 열었지만 자신은 총선에서 패배했다. 그는 지난해 제주평화포럼에서 “국가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선 정치 리스크를 감내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올랑드나 슈뢰더처럼 안팎의 저항과 싸우며 사회·경제 개혁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까? 결심만 한다면 더 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임제 대통령인 만큼 정치적 이해관계는 접어둘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방문에서 박 대통령이 북한 주민의 인권 등 기본 가치를 중시하는 대북 정책의 절실성, 그리고 개혁은 대통령이 진두지휘해야 그나마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한다면 ‘한가한 외교’를 하고 왔다는 비판도 덮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