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할리의 나를 만든 스승
공부에 관심 없는 학생이었던 방송인 로버트 할리(57·사진) 씨는 어떻게 변호사까지 됐을까. 외국인 출신 ‘1호 방송인’으로 한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할리 변호사 겸 광주 외국인학교 이사장. 이제는 어엿한 한국인으로 1997년 ‘하일’로 개명하면서 부산 ‘영도 하 씨’ 시조가 된 그도 미국에서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공부하기 싫어하는 개구쟁이 학생이었다. 이런 어린 학생 할리에게 만약 랜돌프 선생님이 없었다면 지금도 그는 그저 평범한 ‘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스승의 존재’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르지 않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로버트 할리 이사장이 나온 미국 캘리포니아주 유바시 티에라부에나초등학교 전경.
특유의 부산 사투리로 할리 이사장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할리 학생이 훗날 “인생의 전환점”으로 평가하는 변화의 계기를 갖게 된 건 3학년 담임선생님이었던 랜돌프 선생님을 만나면서다. 남들의 무시를 받으며 의기소침해 있던 그에게 랜돌프 선생님이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는 설명이다.
“미국 초등학교에는 아이들이 자신의 관심사나 취미 등을 학생과 선생님 앞에서 직접 소개하는 ‘쇼앤텔(Show and Tell)’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예. 당시 저는 일본에 다녀온 옆집 아저씨가 선물해 준 누에고치를 기르고 있었는데 쇼앤텔 시간에 기르고 있던 누에고치를 가져가 발표를 했지예. 뽕잎을 주면 그걸 먹고 자라서 번데기가 되고 나방이 되는 과정이 너무 신기해서 가져갔지만 걱정은 했지예. 선생님과 아이들이 징그러워 싫어할 줄 알았는데, 랜돌프 선생님이 오히려 저를 칭찬하시면서 1년 동안 교실에서 같이 키워보자고 하시는 기라예. 그러자 그동안 나를 무시했던 아이들도 다가와서 누에고치 좀 보여달라며 난리였어예. 그 이후 자신감이 생겼고, 공부에도 자신이 붙었지예.”
당시 상황을 열심히 설명한 할리 이사장은 “랜돌프 선생님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아이의 취미에도 큰 관심을 보여주시며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신기라예”라고 말했다. 이후 랜돌프 선생님의 격려 속에 할리 이사장은 유타주의 명문사학인 브리검영대와 웨스트버지니아주립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까지 됐다. 할리 이사장은 “랜돌프 선생님의 격려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도 저는 그저 미국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몰라예. 선생님의 작은 격려가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꿔 놓은 거지예”라고 말했다.
할리 이사장은 그러면서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한국은 주입식 위주의 교육시스템이지만, 미국은 창의적 생각과 표현을 하도록 어릴 때부터 교육시키지예. 쇼앤텔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라예. 아이가 공부를 못해도 한국처럼 나무라지 않아예.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지켜봐 주지예. 그게 미국과 한국 교육의 차이인 거 같네예.”
동행했던 부인 명현숙 씨의 남편 자랑이 이어졌다.
“남편은 아이들이 공부를 못해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어요. 시험 전날에도 놀러 가자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많이 다투기도 했죠. 대신, 봉사활동이나 학생회장 활동, 학회 활동 등을 열심히 시켰어요. 이런 활동을 인정받아서 아이 3명이 모두 아버지가 나온 브리검영대에 입학했어요. 지금은 남편의 교육 방침이 맞다는 걸 인정하고 있어요.”
할리 이사장은 1978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에 선교활동을 오면서 인연을 맺었다. 어느덧 미국에서 산 날보다 한국에서 지낸 날이 더 많아졌다. 한국생활 초기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선교활동을 가라는 교회 지시로 한국에 오게 됐지예. 처음에는 ‘햄버거’도 없고 외국인도 많지 않아 외롭고 힘들었어예. 그런데, 하숙집 아주머니 등이 정말 친절하게 대해 주셨어예. 결국, 그 친절함에 1985년 대학원 졸업 후 다시 한국으로 와 지금까지 살고 있네예. 하하하.”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
사진 = 곽성호 기자 tray9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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