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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6년 08월 03일(水)
진정한 새로움은 ‘충돌’서 발생… 괴짜연구·학문융합이 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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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18∼22일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제26회 국제 통계물리학 학술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국제통계물리학학술대회 사이트 캡처


김범준의 과학 이야기 - (16) 국제통계물리학 학술대회

다음 나열된 주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주거용지, 상업용지처럼 대지가 이용되는 패턴을 분석해 여러 도시를 서로 비교하기, 박테리아 세포들이 자라고 이동하는 모습의 실험과 정량적인 분석 연구, 누리 소통망에서 사용자가 다른 사용자를 방문하는 패턴을 동물들이 서식지 내를 이동하는 방식과 비교하기. 아무리 생각해도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런 다양한 주제의 연구가 폭넓게 발표되는 학회가 있다. 물고기가 떼 지어 몰려다니는 현상을 관찰해 방금 발표한 학자는 이제 전 세계 사막화 진행의 수리 모형에 대해 질문한다. 여러 나라의 경제발전을 이차원 평면 위의 유체의 흐름에 빗대어 분석한 연구를 발표한 사람과, 수만 점의 회화작품을 분석해 서양 회화의 과거 발전 양상을

이해하려는 연구자는, 둘이 함께 나란히 한 나라의 과거 대통령 선거 득표율을 분석한 연구자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있다.

▲  통계 물리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볼츠만 메달’.
내가 속한 통계물리학 분야의 가장 큰 국제 학술 대회가 프랑스 리옹에서 열렸다.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 권위 있는 학술대회는 학회가 열리는 대륙을 매번 바꿔 개최된다. 지난 2013년의 25회 대회는 서울에서 열렸고 다음인 27회 학술대회는 2019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최된다.

이번 26회 국제 통계물리학 학술대회에는 1200명 이상이 참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60명 이상이 참석했다. 국제 통계물리학 학술대회에서는, 통계물리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을 맥스웰-볼츠만의 이름을 딴 ‘볼츠만 메달’도 수여된다.

우리나라의 통계물리학자 중 이 메달을 받은 사람은 아직 없다. 매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우리 국민 모두가 그렇듯이, 3년마다 발표되는 볼츠만 메달 수상자를 볼 때마다 정말 다른 나라가 부럽다. 우리나라에서도 빨리 수상자가 나오면 좋겠다.

금년 볼츠만 메달을 수상한 두 분 중 케임브리지대의 단 프렝켈(Daan Frenkel) 교수의 수상 기념 강연이 특히 흥미로웠다. 볼츠만이 엔트로피를 미시적인 상태의 수를 이용해 정의한 지 100년이 더 지난 지금 다시, 엔트로피는 통계물리학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되는 중심 개념이다. 이분은 강연을 통해 지금까지의 엔트로피 개념의 발전 역사를 연예인 저리 가라 할 유머를 곁들여 1000명 가까운 청중을 들었다 놨다 하며 되짚어 보고, 수치계산을 통한 직접적인 엔트로피 측정에 관련된 본인의 연구를 소개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3년이면, 본인이 속한 학문분야가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되짚어 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큰 학회다 보니, 주제에 따라 구분된 8개의 학술 세션이 여기저기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3년 만에 열린 학회의 1000개가 훌쩍 넘는 발표제목들만 대충 훑어봐도 현재 통계물리학 분야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100년이 넘은 전통적인 평형상태의 통계물리학을 비평형상태로 확장하는 방향의 이론적인 연구가 확실히 전체 학계의 중심 연구 주제로 자리 잡았다. 확연한 변화의 또 다른 방향은 바로 다른 학문분야와의 융합이다. 다양한 생명현상을 통계물리학의 시선으로 연구하는 정말 흥미로운 여러 발표가 있었다. 마치 실제 생명체처럼 외부의 빛 자극에 특정하게 반응해 역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능동적인 물질(active matter)에 대한 연구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학회기간 내내 내가 관심을 가지고 계속 참여한 세션의 제목은 ‘학제 간 연구와 복잡계(interdisciplinary and complex systems)’였다. 나는 또 우리나라의 ‘한국 복잡계학회’에도 참여하고 있어 더 큰 관심을 가졌다.

▲  우리나라의 박혜진(앞줄 왼쪽 네 번째) 씨 등을 포함, 우수 포스터상 수상자들과 심사위원들. 국제통계물리학학술대회 사이트 캡처


나를 ‘괴짜 물리학자’라고 부르는 분들이 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물리학자가 하기에는 생소한 연구 주제에 관심을 가질 때가 많아서다. 하지만 위에서 잠깐 열거한, 리옹에서의 일주일에 내가 접한 정말로 다양한 통계물리학 연구를 떠올려보라. 나만 괴짜가 아니다.

여러 사람의 모습이 가득 들어있는 복잡한 그림에서 빼빼 마른 안경 쓴 주인공을 찾는 ‘월리를 찾아라’라는 재밌는 책이 있다. 이처럼 복잡한 시각정보가 섞여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시선을 움직여 원하는 정보를 찾는지를 분석한 진짜 괴짜 같은 연구도 있었다.

리옹의 일주일간 ‘학제 간 연구와 복잡계’세션에서 발표된 170여 연구 모두를 괴짜라고 하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다. 괴짜연구는 이제 통계물리학 분야의 주류 중 하나다. 아니, 이제 이런 연구를 괴짜연구라고 할 수는 없게 되었다. 통계물리학의 연구방법을 적용해 정말로 다양한 현실세계의 문제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이제 분명한 학계의 주류다.

2005년 발생한 프랑스의 폭동사태에 대한 연구부터 언어의 시대 변천에 대한 연구까지. 독도와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호칭)처럼 논쟁적인 항목에 대한 위키피디아의 경쟁적인 편집 전쟁에 대한 연구부터 사람들이 어떻게 좁은 출구로 탈출하는지에 대한 실험 연구까지. 다른 나라 연구자의 발표를 듣다 보면, 타학문 분야 연구자와의 협업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활발한 것 같아 부럽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주제의 연구가 학제 간 융합의 형태로 더 활발하게 진행되기를 바란다.

어디선가 읽은 재밌는 이야기다. 사람들에게 깃털과 이빨이 있는 상상의 동물을 그려보라 할 때와, 새 깃털과 물고기 비늘이 함께 있는 동물을 그리라고 할 때, 사람들이 그린 그림들이 많이 다르다는 거다. 잘 떠올려 보면 깃털과 이빨이 함께 있는 동물은 어디선가 본 것도 같아서 사람들이 상상해 그린 동물의 모습은 아주 낯설지는 않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두 번째 경우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깃털과 비늘을 동시에 함께 가진 동물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깃털과 비늘은 하나의 공통적인 원시 구조에서 출발해 서로 다른 진화의 가지로 분기한 거다. 둘을 동시에 갖는 동물이 떠오르지 않는 이유다.)

이럴 때 사람들은 정말 기발한 동물들을 상상해서 그린다고 한다. 깃털과 이빨처럼 새롭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익숙한 둘의 만남은 이미 있는 동물의 모습에서 약간의 변형만을 만들뿐이다. 깃털과 비늘처럼 기존의 경험과 지식을 넘어서는 전혀 생소한 둘의 만남은 이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

진정한 새로움은 충돌에서 발생한다. 물론 충돌은 고통스럽다. 첫 조우에서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은 충돌의 지속이다. 잦은 충돌과 계속된 고통의 숙성을 통해서만 새로움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가깝지 않은 분야를 잇는 충돌적인 융합연구가 오히려 진정한 새로움을 만드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요즘 언어의 공간적인 시각화라 할 수 있는 타이포그래피 분야의 연구자와 무언가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연구를 모색하고 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만나서 얘기하다가 “아, 이건 내가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은 거의 없어 막막할 때가 많다.

그런데 물리학과 달라도 더 이상 다를 수 없는 분야의 연구자와 이야기하다 보면 배우는 게 정말 많다.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맥주병에 인쇄된 맥주 이름도, 지금 이 글을 쓸 때 눈에 들어오는 한글 폰트도, 이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로 내게 다가온다. 미적 감각이 많이 부족한 물리학자인 내가 리옹에서 기념품으로 받은 흰 셔츠에 인쇄된 통계물리학회 로고의 색깔 배치에 대해서도 할 말이 생겼다. 일 년 전만 해도 생각도 못한 일이다.

또 얼마 전에는 국악 세계화의 꿈을 꾸는 분도 만났다. 이건 또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그분의 말을 들은 후 귀에 들어온 국악은 그전에 들었던 그 음악이 아니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물리학자 말고 다른 분들을 만나는 것이 훨씬 더 재밌다. 당장 무슨 구체적인 공동연구가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너무너무 재밌을 때가 많다.

짧은 대화에서 깨달은, 세상을 보는 완전히 새로운 시선의 존재는 짧은 시간 안에 마음속에 각인되어, 잊으려 해도 도대체 잊어지지가 않는다.

학회 마지막 날 기쁜 소식이 있었다. 내 연구그룹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곧 박사후연구원으로 출국하는 박혜진 양이 학회의 우수 포스터 상을 받았다. 세종대의 정형채 교수님과 함께 진행한, 공간상에서 어떻게 협력의 상황이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이론적인 연구다. 700개 정도의 포스터 중 극히 소수에게만 주어진 상이다. 이제 물리학 박사라는 새 이름으로 세상에 나가, 이리저리 새로운 충돌을 시작할 제자에게 큰 선물이 되었기를 바란다. (문화일보 7월 6일자 24면 15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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