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카페>높이 날아 멀리 보면 ‘하나’로 보이건만 이것저것 구분 지으니 서로 通하겠는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 = 안은진 기자 eun0322@

김정탁의 장자 이야기 - (17) 道 안에선 모두 하나로 통한다(道通爲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성철 스님이 말해 유명해진 말인데 원래 이 말은 중국 당나라 청원유신(靑原惟信) 선사의 설법에서 유래되었다. 청원 선사는 중국 선종의 임제종(臨濟宗)과 쌍벽을 이루는 황룡파(黃龍派) 소속의 스님으로 유명하다. 이 스님이 참선에 들기 전에 한 말이 ‘산은 청산(靑山)이요, 물은 녹수(綠水)이다.’ 그런데 참선을 한 지 30년이 지나 깨침을 얻고 보니 ‘산은 산이 아니요, 물도 물이 아니다.’ 그리고 마침내 도(道)를 터득하고 보니 ‘산은 의연히 그 산이요, 물도 의연히 그 물이다.’

말장난 비슷한 설법이 깊은 진리를 담는 건 어째서일까? 첫 번째 ‘산은 청산이요, 물은 녹수이다’는 깨침이 없는 상태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두 번째 ‘산은 산이 아니요, 물도 물이 아니다’는 산과 물에 대한 인식을 이루었다가 이내 그 인식이 사라진 뒤에 바라본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산은 의연히 그 산이요, 물도 의연히 그 물이다’는 무념(無念) 내지 고요한 적(寂)의 상태, 즉 나란 인식 주체가 사라졌을 때 바라본 모습이다. 이 모습은 눈에서 인식 대상이 사라진 게 아니라 마음에서 대상에 대한 인식이 지워졌기에 가능하다. 이런 상태는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 감각과 그 감각작용의 결과인 의(意)가 공(空)한 상태에 이를 때 가능할 수 있다.

불가는 이 마지막 단계를 이상으로 삼는다. 물론 이 상태에 이르면 소통도 문제 될 게 없다. 모든 걸 텅 비운 마음으로 바라보니 소통이 저절로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상태에 이른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는 점이다. 깊은 산속에 홀로 들어가 정진하면 혹시 가능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당장 소통해야 할 상대는 어쩌면 시장바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다. 즉 우리가 마주하는 소통의 공간이란 어수선한 일상이지 현실과 단절된 정숙한 공간이 아니다. 그러니 장자가 추구하는 소통 방식은 불가의 그것과 다르다. 이에 장자는 ‘길은 사람들이 걷다 보니 저절로 생겨났다’는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과 ‘사물에 이름을 붙이다 보니 저절로 이름이 되었다’는 물위지이연(物謂之而然)이란 개념을 제시한다.

‘도행지이성’이란 말을 이해하기 위해선 길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먼저 살펴봐야 한다. 지금의 길은 가능한 한 똑발라야 하기에 측량과 설계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터널을 뚫고 다리를 놓는다. 그렇지만 장자가 살던 시기의 길은 측량과 설계의 대상이 아니다. 산에 오르는 길을 한번 생각해 보자. 산길은 누가 의도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사람들이 다니다 보니까 저절로 생겨났다. 절벽을 마주하면 적당히 돌아가고, 그렇더라도 지나치게 돌아가지 않는다. 목적지까지 빨리 갈 필요도 있어서이다. 그래서 이 길은 자연의 결을 무시하고 만든 쭉 뻗은 고속도로 같은 길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쭉 뻗은 길이 인간의 의지와 기획이 깔린 인위(人爲)의 길이라면 산길은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무위(無爲)의 길이다.

만물에 제각각의 이름이 있는 것도 길이 생겨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이다. 우리가 말(馬)을 가리켜 말이라 하는 건 처음에 말이라 불렀기에 그 이름을 갖는 것이다. 애초에 소(牛)라 불렀더라면 소란 이름을 가졌을 것이다. 이처럼 표현하려는 대상과 표현하는 말 사이의 관계는 고정된 게 아니라 자의적이고 임의적이다. 즉 약속으로 이루어진 관계이기에 약속이 더 이상 효력을 지니지 못하면 이 관계는 깨지고 만다. 그런데 우리가 말에 부여한 약속이란 게 별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새의 지저귀는 소리에도 새들끼리 그런 약속이 있지 않겠는가? 이것이 장자가 ‘물위지이연’이란 개념을 통해 말하려는 바이다. 그러니 언어의 의미가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만 소통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그래서 장자는 말한다. “스스로 그러하니까 그럴 수 있고(有自也而可), 스스로 그러하니까 그럴 수 있지 않다(有自也而不可).” 또 “스스로 그러하니까 그런 것이고(有自也而然), 스스로 그러하니까 그렇지 않다(有自也而不然).” 또 “어째서 그러한가? 그러하니까 그렇다(惡乎然? 然於然). 어째서 그러하지 않은가? 그러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않다(惡乎不然? 不然於不然).” 한마디로 말해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내용이다. 즉 판단 기준을 정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에서 ‘그렇다/그렇지 않다’ 식의 구분이 생겨나는 건 판단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서이다. 반면에 판단 기준을 널찍이 잡으면 ‘그렇다/그렇지 않다’의 구분은 모호해진다. 장자는 소통을 위해 이 판단 기준을 되도록 널찍이 잡도록 요구한다. 장자가 자신의 책 도입부를 ‘대붕의 비상(飛上)’으로 설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붕처럼 높이 날아 멀리서부터 아래를 내려다보면 모든 게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보여서이다. 그래서 장자는 “천지는 하나의 손가락(指)이고, 만물은 한 마리의 말(馬)이다”라고까지 주장한다. 물론 이런 파격적 주장은 판단 기준을 아주 널찍이 잡았을 때 가능하다.

그러니 불통이 생겨나는 건 판단 기준이 좁아서이다. 이것이 장자가 말하는 고착된 마음, 즉 성심(成心)이다. 만약 성심을 버리고 누군가를 상대하면 소통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성심을 버린 사람은 사물을 대소(大小), 미추(美醜), 선악(善惡) 등으로 가능한 한 구분하려 들지 않는다. 설령 구분하더라도 그 기준이 널찍하여 대소, 미추, 선악 간에 있어서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다. 이런 사람들은 “사물이란 본디부터 가한 바 있다(物固有所可)”와 “사물은 본디부터 그런 바 있다(物固有所然)”의 진리를 깨달아서이다. 장자는 이런 사람을 가리켜 통달한 사람, 즉 달인(達者)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통달한 사람만이 모든 게 하나로 통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장자는 말한다. “가로의 대들보와 세로의 기둥으로 쓰이는 나무들은 그 용도에 있어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도 안에선 모두 하나로 통한다(道通爲一).” 또 “고대 중국의 최고 미인 서시(西施)와 흉측스러운 문둥이도 그 생긴 모습에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 역시 도 안에선 하나로 통한다.” 참고로 서시는 춘추시대 월왕 구천이 미인계를 위해 오왕 부차에게 상납한 여인이다. 부차는 서시의 미모에 빠져 결국 나라를 월나라에 빼앗겼다. 그러니 서시는 나라를 기울게 만든, 경국지색의 미녀이다. 또 “익살스러움과 교활함, 속임수와 신기함도 그 내용에 있어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도의 관점에선 매한가지이다.”

게다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모습도 도 안에선 모두 하나로 통한다. 예를 들어 한쪽에서 나누어짐(分)은 다른 쪽에선 이루어짐(成)이고, 한쪽에서의 이루어짐은 다른 쪽에선 허물어짐(毁)이다. 그래서 만물이 나누어지고, 이루어지고, 허물어지더라도 이 모두는 하나로 통하기에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에 따라 사물을 제각기 달리 바라볼 필요가 없다. 자연의 변화란 나누어짐 ? 이루어짐 ? 허물어짐 ? 나누어짐의 순환관계여서이다. 그래서 통달한 사람은 만물의 나누어짐과 이루어짐, 또 허물어짐의 한 단면만을 보고 이를 사물의 모습이라 판단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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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장자가 볼 때 사물의 모습은 시간의 변화에 따라 그 외형만 다를 뿐이지 모든 사물의 근본 된 모습은 동일하다. 예를 들어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지만 자연의 근본 된 모습은 하나이다. 그렇다면 삶과 죽음도 이런 식으로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흩어진 기(氣)들이 합쳐져 하나의 생명체가 되고, 또 그 기들이 흩어져 죽음에 이르고, 또 흩어진 기들이 합쳐져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순환을 거듭한다고. 만물의 모습이 이러하다면 나누어짐은 곧 이루어짐이고, 또 이루어짐은 곧 허물어짐이다. 그러니 세상 만물은 이루어짐과 허물어짐의 구분 없이 모두 하나로서 통한다.

이런 식의 도를 일찍이 터득한 사람으로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주인공 새옹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새옹이 소중히 기르던 말 하나가 오랑캐 땅으로 달아나자 주위 사람들이 걱정했는데 새옹만은 낙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달아났던 말이 준마 한 필을 끌고 오자 주위 사람들이 환호했는데 새옹은 기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 후 아들이 준마를 타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자 주위 사람들이 걱정했지만 새옹은 낙심하지 않았다. 큰 전쟁이 일어나 아들이 전쟁에 끌려가지 않자 주위 사람들은 새옹이 왜 낙심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다.

새옹처럼 통달한 사람은 어째서 모든 게 하나로 통하는 걸 아는가? ‘평상시 한결같은 상태’, 즉 제용(諸庸)의 상태에 자신을 놓아두어서이다. 이런 상태는 자신의 판단을 내세우지 않기에 가능하다. 그래서 자신이 ‘나뉘어도’ 포기하지 않고, ‘이루어져도’ 기뻐하지 않으며, ‘허물어져도’ 좌절하지 않는다. 마치 여름의 더위가 극성을 부려도 가을이 올 걸 예상하고, 또 겨울의 추위가 맹위를 떨쳐도 봄이 올 것 예상하며 기다릴 줄 아는 것과 같다. 사시사철의 순환은 살면서 쉽게 터득하는 진리이다. 그렇지만 이런 경험을 미처 터득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나는 세상사라도 제용의 상태에 이르면 새옹처럼 그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그러니 자신과 소통을 이루려 해도 판단을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 하물며 다른 사람과 소통을 추구하려 들면 더더욱 자신의 판단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물론 대붕처럼 높이 날아 세상을 관조한다면 판단중지 상태에 쉽게 이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새처럼 날 수 없기에 발을 딛고 있는 땅 위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이란 한 발짝 뒤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볼수록 불필요한 차이와 구분이 사라지면서 상대방과 소통의 길로 자연스럽게 들어선다. 이 점이 무념(無念) 내지 적(寂)의 상태에 이르러야 소통의 가능성이 열리는 ‘엄숙한’ 불가식 접근과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화일보 8월17일자 26면 16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