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기자의 엔터 톡>아버지 뭐하시노?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이 명대사가 기억나십니까? 2001년 개봉된 영화 ‘친구’에서 고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을 체벌하기 전 습관처럼 던지는 질문입니다. “장의사”라고 답한 동수(장동건)에게 선생님은 “그래 이놈아 느그 아버지는 죽은 사람 염해가메 니 공부시키는데 공부를 이 꼬라지로 하나”라며 뺨을 때렸죠.

십수 년이 흐른 지금, 이 대사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새삼 느낍니다. 번듯한 직장을 가진 아버지를 둔 학생이라면 자랑스러울지도 모르지만, 굳이 밝히길 원치 않는 학생들에게는 한두 대 얻어맞아 얼얼한 뺨보다도 정신적 충격이나 모멸감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더 컸을 법합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 교육부는 지난 2013년부터 가정환경조사, 진로상담조사 등에서 학부모의 재산이나 직업, 학력 등을 캐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죠.

하지만 TV를 보면 부모의 재력과 직업 등은 여전히 대단한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방송된 케이블채널 Mnet ‘슈퍼스타K 2016’에는 미국 하버드대 출신 전재민 씨가 출연했죠. 전 씨의 학력만큼이나 관심을 끈 건 그의 아버지가 모 대기업의 고위 간부라는 사실입니다. 심사위원인 가수 길은 “대기업 어느 회사?”라고 물었고 전 씨는 “휴대전화 뭐 쓰세요?”라고 되물었습니다. 제작진은 ‘S전자 부사장님’이란 친절한(?) 자막을 달았죠. 바로 전주에는 이 장면을 예고편으로 사용하며 대대적으로 홍보했습니다.

‘슈퍼스타K’는 지난 시즌4 우승자 로이킴이 유명 탁주 회사 회장의 아들이란 점을 적극적으로 내세워 여론몰이에 성공했습니다. 또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인 SBS ‘K팝 스타’ 역시 지난해 유명 출판그룹 회장의 손녀인 박윤하 씨가 참가자로 나서 눈길을 끌었죠. 대중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신인과 그들을 알려야 하는 제작진 입장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집안의 핏줄이라는 ‘팩트’는 충분히 매력적일 겁니다.

물론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그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다는 겁니까?”라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가난이 죄가 아니듯, 부자 부모 슬하에서 자란 것이 약점이나 공격 대상이 돼서는 안 되니까요. 하지만 끼와 재능, 외모가 인기의 바로미터가 되는 연예계에서 부모의 배경으로 먼저 주목받는 것도 그리 온당치는 않아 보입니다.

결국 이를 다루는 방송 제작진의 마음가짐이 달라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시청률이라는 서슬 퍼런 척도 앞에서 방송 제작진의 윤리의식보다 직업의식이 먼저 발동한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건, 참가자들의 실력이지 배경이 아니라는 점을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realy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