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徐遊記>(979) 47장 대세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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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이 잠자코 앞에 앉은 국방전략위원장 왕문 교수를 보았다. 오전 10시 반, 긴급 국무회의를 마치고 회의실 옆쪽의 상담실로 들어와 왕문으로부터 정세 보고를 듣고 있다. 이미 국무회의에서 필요한 조치는 다 해놓은 터라 조금 여유가 있었다. 아침 7시부터 긴급 소집된 국무회의는 3시간이 넘도록 진행되었던 것이다. 왕문 교수는 베이징대 교수로 국방위 소속 위원이다. 국방전략위원회는 현 정세를 연구 검토해 국방과 외교부에 조언을 해주는 조직으로 중국의 대외관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시진핑이 자주 왕문을 불러 주변 정세에 대한 보고를 받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왕문이 말을 이었다.

“오늘 회의에서 일부 인사들이 이번 신의주 사건을 1896년에 조선왕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것에 비유했는데 그건 과장된 발언입니다.”

왕문은 66세, 역사학자다. 시진핑은 틈만 나면 왕문을 불러 역사 공부를 하는 것이다. 오늘은 리커창과 산둥성 서기 리정산, 외교부장 우린까지 넷이 듣고 있다.

“현재 푸틴이 서동수에게 신의주 정보를 알려준 것과 아관파천 당시의 조선 상황은 전혀 다릅니다.”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맞지 않소?”

시진핑이 묻자 왕문이 대답했다.

“그때는 조선이 자력(自力)으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 전해인 1895년 8월에 조선 왕비 민비가 왕궁에서 일본인들에게 살해되는 기가 막힌 사건까지 벌어졌습니다. 그 전해인 1894년, 일본은 청·일 전쟁에서 청에 승전했지요.”

시진핑이 어금니를 물었고 모두 숨을 죽였다. 왕문이 말을 이었다.

“조선왕은 친일 내각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가서 1년 동안 그곳에서 정무를 보았지요. 그건 나라도 아니었습니다.”

“…….”

“지금은 다릅니다. 푸틴과 서동수는, 아니, 한국은 거의 대등한 동맹국 수준입니다. 남북한 병력과 핵까지 보유한 군사력은…….”

왕문이 입을 다물었다. 위협적이다. 그래서 일본이, 중국이 긴장해서 남북한의 연방으로의 통합을 견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시진핑이 물었다.

“왕 위원은 앞으로 동북아 정세가 어떻게 될 것 같으시오? 학자적인 의견을 들읍시다.”

이미 국무회의에서 이번 신의주 사태에 대한 대응책은 결정된 것이다. 시진핑의 시선을 받은 왕문이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리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 남북한 분위기를 보면 기운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리커창과 우린, 리정산이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이런 표현을 공식 석상에서 듣기는 처음이다. 기운이라니? 주석 앞에서는 숫자로 표시된 통계를 말해야 옳다. 시진핑이 가만있었으므로 왕문이 말을 이었다.

“그 기운이 점점 강력해져서 어설프게 눌렀다가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주석동지.”

“…….”

“그것을 역사적으로 말하면 대세(大勢)라고 하지요. 예,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이 기운은 청(淸)이 건국할 당시의 기운, 그 전에 몽골 대제국이 발흥했던 때의 기운과 흡사합니다. 따라서…….”

“그만.”

말을 자른 시진핑이 웃음 띤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시진핑이 머리를 끄덕이자 왕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깨를 펴고 있는 것이 할 말은 했다는 표시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