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하는 워킹맘·노래하는 농부… ‘보통사람이 만든 문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29·30일 ‘전국생활문화제’

전국 120개 동호회 한자리에… 문화 소비자서 문화 공급자로

뮤지컬·음악회·전시 등 선봬… 지역색 살린 체험 프로그램도

‘문화 소비자에서 공급자로.’

‘문화꾼’을 자처하는 전국의 생활문화동호회들이 한자리에 모여 숨겨뒀던 끼와 열정을 발산한다. 약 120개 동호회가 참여해 각 지역의 생활문화를 함께 나누고 즐기는 ‘2016 전국생활문화제’가 오는 29∼30일까지 서울 강북구 월계로 북서울꿈의숲 공원에서 열린다.

지난 2014년부터 시작된 생활문화제는 올해로 3회째를 맞았다. 생활문화진흥원이 지난 5월 출범해 후원하면서 내용이 더욱 풍성해졌다. 문화제는 소비자에 머물던 시민이 문화의 공급자로서 창작활동의 주인공이 되는 무대다. 인천, 경남, 강원 등지에서 온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공연, 전시, 체험 프로그램을 전문가 뺨치는 솜씨로 선보인다.

◇인천 부평 놀이터, 창작뮤지컬 ‘소우주환상곡’

가장 시선을 끄는 무대는 인천 부평구의 생활문화예술 동아리 연합체인 ‘놀이터’가 준비한 문화제의 개막 공연 ‘소우주환상곡’(위 사진)이다. 놀이터는 지난 3월로 연합체 창립 20주년을 맞이했다. 현재 10개 동아리의 약 500명이 참여하고 있다. 소우주환상곡은 20주년 기념작이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동아리 모임을 하는 사람들이 정기공연을 앞두고 좌충우돌하는 일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연출과 작곡, 안무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으나 연기만큼은 연합체 회원들이 직접 했다.

우쿨렐레 동호인이기도 한 김진순(43) 씨는 “공연의 테마가 바로 우리 동호인들의 이야기라는 점 때문에 이 뮤지컬에 꼭 참여하고 싶었다”며 “뮤지컬은 특히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분야였는데 내가 직접 공연하는 것에 끌렸다. 지금껏 세 차례 정도 무대에 섰으나 전국 무대는 처음이어서 무척 기대되고 설렌다”고 밝혔다.

또 다른 시민 정경(40) 씨도 “한때 뮤지컬 배우를 꿈꾼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점차 꿈을 잊고 워킹맘으로서 직장생활과 육아에 지쳐 있었는데 합창과 뮤지컬 활동을 병행하며 오히려 더 큰 에너지를 얻었다”면서 “동호회 덕분에 틀에 박힌 관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교류를 했고 일상에 큰 활력을 가져오게 됐다”고 말했다.

◇경남 거창 ‘노래하는 농부들’

경남 거창군의 ‘거창하게 노래하는 농부들’(왼쪽 아래)은 동호회원의 평균 연령이 60세다. 50대 후반에서 70대 중반의 24명이 활동 중인 동호회는 2007년 결성됐다. 고추·들깨·사과·오미자·양파·감자 농사 등 고된 일을 ‘본업’으로 삼다가 노래가 인연이 돼 만났다.

단순한 취미활동은 어느새 프로페셔널한 모임이 됐다. 매년 1회씩 정기공연을 한다. ‘농사는 운명, 노래는 숙명’이라는 슬로건 아래, 2011년 농촌진흥청이 주관하는 제1회 노래하는 농부들 합창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지난해에는 주민자치센터 우수 동아리 경연대회에서 군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가곡 ‘비목’, 대중가요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 ‘사랑으로’부터 외국 가곡 ‘산타루치아’ ‘샹젤리제’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고 있다.

고추 농사를 짓는 임시종(66) 씨는 2012년 30년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거창군에 귀농해 합창단에서 3년째 활동하고 있다. 낯선 환경에 방황하던 임 씨 부부에게 동호회는 큰 힘이 됐다. 임 씨는 “성별도, 나이도, 개성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모니를 이뤄 한 곡을 마칠 때마다 더불어 사는 인생의 의미를 느끼게 된다”며 “나보다 시골생활을 더 힘들어했던 아내 역시 합창단을 시작한 후로 활기를 찾고 부부간 대화도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강원 정선, 숲이랑 협동조합

뮤지컬과 합창 등 공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적 특색을 살린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강원 정선의 공예 체험 프로그램 ‘숲이랑 협동조합’(오른쪽 아래)이 두드러진다. 이 협동조합은 자연 친화적인 프로그램으로 지역 문화 활성화에 큰 몫을 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숲 속의 체험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체험 학교는 정선읍 고한 지역 함백산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꽃차 만들기’ ‘나뭇가지 브로치와 은행알 팔찌 만들기’ 등 숲의 자연환경을 활용한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으로 이뤄져 있다.

체험 학교는 함백산 부근에 거주하던 유미자(57) 씨가 숲이랑 협동조합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협동조합이 먼저 구성돼 작은 규모의 체험 학교를 열었고, 이후 범위가 확대되면서 2013년 하반기부터 ‘숲 속 활동’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숲 속 학교에서는 명상, 트레킹, 해설, 걷기 등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유 협동조합 대표는 “아직도 생활문화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문화제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생활문화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며 “우리 협동조합은 창작활동을 넘어 정선군 내 벼룩시장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역 특성을 살린 생활문화로 지역 내 축제를 주도할 수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