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친박, 최순실의 ‘정치적 共犯’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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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범 논설위원

2012년 8·20 전당대회서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 박근혜 의원이 선출된 후 어느 가을날, 친박 핵심 의원 10여 명이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 옹기종기 모였다. 박 후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와 있던 그들은 잡담을 시작했고, 대화 내용은 자연스럽게 선거 전략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문제점은 대체로 일치했다. ‘이 자리에서 건의하자’는 즉석 의기투합이 이뤄졌다. 박 후보를 마주한 순간, 머릿속은 ‘직언이 박 후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 앞섰다. ‘충정’은 하얀 침묵으로 변했다. 결국 모임 내내 듣기 좋은 덕담과 실없는 농담만 오갔다. 그들은 늘 이런 식이었다. 고양이 앞 쥐였다. ‘박근혜 51.6%, 문재인 48.0%’. 그들의 집권은 이렇듯 맹종으로 시작됐다.

‘배신 트라우마’의 영향일까. 박 대통령을 닮은 친박의 배타성은 유별나다. 그러다 보니 반발도 커 친박 후보가 당내 경선에서 이긴 적이 별로 없다. 2015년 1월 이주영·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 자리를 두고 맞붙었다. 친박 핵심들이 움직였다. 박 대통령이 싫어하는 유 의원을 저지하기 위해 이 의원을 조직적으로 밀었다. 공작은 치밀했다.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이 시내 모 호텔에서 초선의원 여러 명을 승합차에 태워 청와대로 실어날랐다. 박 대통령 면담을 마친 후 그들은 다시 친박 최고 실세들이 기다리는 강남 술집으로 옮겨졌다. 회유와 설득이 이어졌다. 하지만 ‘반(反)유승민’ 작전은 실패했다. 참석자 중 일부가 불공정하다며 반발해 작전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84대 65. 그러나 박 대통령은 집요했다. 유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낙인찍었고 5개월 만에 쫓아냈다. 친박이 못한 걸 직접 한 셈이다. ‘집권 친박’의 정치도 맹종이었다.

과반의석(51.4%)을 가진 여당이 공천 파동으로 20대 총선에서 처참히 패해 원내 2당(41.0%)으로 전락한 것은 충격적 사건이다. 내각은 물론 당 지도부가 총사퇴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래야 책임을 지는 대의·정당 정치가 성립한다. 박 대통령의 “민의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는 계기”라는 50초짜리 정치평론에서 패배는 남의 일이었다. 친박도 자유로워졌다. 공천을 주무르던 실세 친박은 물론 청와대 정무수석까지 건재했다. 국민 심판이 무색했다. 헌정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계파 싸움 와중에 사퇴를 예고했던 김무성 대표의 퇴진이 유일했다. 맹종 앞에 정치적 책임은 없었다.

이후 수습은 더 가관이었다. 민심 수습을 위해 임명하려던 혁신비상대책위 위원장을 비박계라고 거부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비대위는 “현충일인데도 회의를 하느냐”는 식의 절박감조차 없는 조직이었고, 수습책은커녕 “새누리당은 능력도 없고, 미래 비전도 안 보이고, 성격도 나쁜, 어디에도 쓸모없는 남자”라는 여성 비대위원의 욕지거리만 남겼다. 박 대통령이 패배 책임론을 벗기 위해서는 주류인 친박이 ‘무죄’여야 했다. 스스로 내시(內侍)라며 입지전적 인물로 포장된 이정현 당 대표의 탄생은 그래서 가능했다. 맹종은 대통령과의 의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친박도 무한책임이 있는 최순실 사건은 맹종의 압권이다. 미르·K스포츠재단의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최순실·차은택 증인 채택을 결사적으로 무산시켰지만 결국 부메랑이 됐다. “사인(私人)들의 행동은 국회 바깥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는 게 한 이유였다. 이쯤 되면 헌법기관으로 부르기도 민망하다. 공범 수준이다. 맹종이 후안무치로 역진했다. 박 대통령은 “연설과 홍보에 도움을 받았다”는 95초짜리 고백으로 정치적 금치산자가 됐고 하야론·탄핵론이 들끓는다. 기세등등하던 친박은 침묵하고 있다. 그 많던 친박들은 모두 어딜 갔나. 정권만을 위해 존재하는 ‘참 나쁜 검찰’은 ‘부존재 가처분 신청’이라도 내고 싶지만 친박보단 덜하다. 위기 수습을 위한 친박 당 지도부 퇴진 요구에 “차라리 (비박계가) 당을 떠났으면 좋겠다”며 적반하장이다. 집권 3년 8개월 동안 제대로 된 건의 한 번 한 적 없다. 결국 맹종이 최 씨의 국정 농단을 낳았다. 석고대죄도 모자랄 친박이 이제 살기 위해 변신하고 있다. 침몰하는 박근혜호 탈출하기, ‘대통령 팔아 호가호위한’ 강성 친박과 차별화하기, 반기문 총장에게 줄 서 장기집권 도모하기…. 또 그렇게 차기 총선에서 살아남아 여의도로 올 것이다. 역대 이런 계파는 없었다. 언제까지 이런 모습을 계속 봐야 하나. 아, 대한민국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