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지방정부에 ‘민생司法權’까지 주는 ‘자치분권 개헌’ 바람직”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충남 홍성군 홍북면 충남지사 공관에서 현 정국에 대한 의견과 그동안의 도정 성과 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충남도 제공

임기중반 단체장 연속 인터뷰 - 안희정 충남지사
인터뷰 = 노성열 전국부장

지난 1일 안희정 충남지사 인터뷰는 이례적으로 충남 홍성의 충남도청 뒤편 산자락에 위치한 도지사 공관 서재에서 진행됐다. 당일 도청으로 청양 폐기물처리장 항의집회를 하러 온 노인 시위대가 몰려왔기 때문이다. 충남도와 상관없는 기초단체의 민원인데도 도지사를 찾는 걸 보니 인기가 좋다 해야 할지 잠시 헷갈렸다. 안 지사가 앉은 테이블 위로 책이 몇 권 쌓여 있었는데 맨 위에 놓인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대통령의 말하기’(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 저)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함께 보좌했던 옛 동료가 낸 책이니까 당연히 읽을 만도 하겠지만, 도정과 정치권을 넘나들며 사실상 대권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는 그의 강력한 권력의지가 투영된 듯 느껴졌다.

―도지사로 6년간 재임 중인데 이렇게 긴 기간에 행정 업무를 천착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인가.

“도지사는 제 최초 공직이다. 야당의 당직자 생활과 지방자치 실무연구소라는 사단법인 민간단체 책임자 역할은 해봤지만 공직은 처음이다.”

―광역단체장으로 일하면서 현재의 지방자치에서 광역단체가 할 수 있는 역할과 한계 같은 것을 느꼈을 것 같은데.

“우선 우리나라는 지방자치 분권을 실시하고 있지 않다. 무늬만 지방자치다. 지방자치의 핵심은 자율권이다. 그런데 현재 자치단체가 하고 있는 업무 중 80%가 상위법령에 의한 위임사무다. 그러니까 사실상 지방자치의 핵심인 자율과 자기책임성이라 할 것이 없다. 직접 선출된 자치단체장들이 관선 때보다 집행과정에서 민의를 더 반영하면서 민주주의성이 향상되고 행정의 서비스 기능과 현장 기능이 강화됐다는 정도지, 창의와 도전을 통한 새로운 자율시대의 개막 측면에서 보면 아직 진정한 지방자치가 아니다.”

―그러면 현재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대안은 무엇이라고 보나. 자기 동네 일은 자기가 결정하게 하자는 것인가.

“크게 보면 국가를 대표하는 중앙정부와 행정적 서비스를 담당하는 생활정부의 2단계로 나누고, 중간 단위에서 광역정부를 적절한 수준으로 구성시켜 줘야 한다. 국가가 지방정부에 최소한의 표준·규격을 나눠주되, 집행과 행정운영의 자율성은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주민 요구가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민주주의성이 높아진다.”

―외국의 자치정부는 국방이나 안보를 제외한 생활 사법기능도 갖고 있는데 그런 민생 사법기능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꼈나.

“당연히 느낀다. 예를 들어 충남 아산의 유성기업 노동쟁의 사태는 현장 근로감독권과 지방경찰 조직이 도지사에게 있었다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렸을 것이다. 현재의 자치단체를 지방정부 수준으로 높이고 자치와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국가효율에 훨씬 더 유익하다. 그것이 미래에 부합한다. 차후에 우리가 헌법 개정을 한다면 핵심은 자치분권 헌법으로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대적 정신이다.”

―지방분권형 개헌을 말씀하셨는데 개헌과 권력구조 개편 문제에서 안 지사의 제안은.

“개헌을 당장 내년 대선을 앞두고 후딱 해치우자라고 하는 논의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현 대통령이 제안했던 것처럼 국면전환용으로 개헌을 얘기하자고 하면 그건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자로서 내가 볼 때 실격이다. 대통령 중심제가 가지고 있는 과도한 입법권과 예산심의권 같은 것들은 의회의 권한을 높여주는 쪽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본다. 10년이나 20년의 기간을 예상하고 개헌작업에 착수해야 개헌의 정치적 악용을 막을 수 있다. 대한민국이 1000년 이상 간다고 보고 그 기본토대를 놓는 민주주의 제도의 설계에 20∼30년 쓰는 게 뭐 그렇게 긴 시간인가.”

―최순실 사태를 보면서 한국은 아직도 근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태를 봉합하고 국가가 굴러가게 하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드러나고 있는 범법 사실이 너무 커서 더 이상 대통령이 용서를 구하는 수준에서 문제는 안 풀린다. 용서를 구해도 문제가 안 풀리기 때문에 법으로 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이미 민심의 바다에서 탄핵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든 도망가려고만 할 뿐, 책임 있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 보다 못한 국민이 나서서 광장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다. 대통령께서는 박근혜정부의 실질적 임기가 끝났음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의회와 협의하겠노라 선언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신속히 현 지도부를 교체해 야당 지도부와 의회의 책임 있는 협조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의회 주도하에 국정 표류를 막기 위한 향후 국정 운영 계획과 일정을 확정하자. 이 의회의 결정에 대통령이 순응하지 않는다면 의회는 모든 헌법적 권한을 행사하겠노라 선언해야 한다.”

―대표 정책인 ‘3농(농어업, 농어촌, 농어업인) 혁신’의 성과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민선 5기 출범과 더불어 충남도정의 핵심 어젠다로 3농 혁신을 선정해 추진하고 있다. 초기의 회의적 시각을 극복하고 지난 6년 동안 민관협력 시스템이 잘 구축돼 다양한 농어업 주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농업회의소 시범사업’에 충남도가 선정됐고, 축산농가 퇴·액비사업, 주민역량 강화 후 마을지원시스템 구축 등은 충남도 모델이 정부 정책으로 채택돼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사례다. 제2의 농어촌 개혁운동으로 인식하고 동참하는 분위기다. 농업과 농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는 점, 거버넌스형 농정체계 구축을 통한 통합농정의 기틀을 마련한 점이 가장 큰 성과다. 올해부터는 통합유통시스템 구축, 청년 창농 등에 방점을 두고 3농 혁신 2단계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실상 대권 도전 행보를 하고 있다. 도정에 소홀하다는 비판도 있는데 도정과 대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보는지.

“먼저 도정에 충실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 내년 예산 확보나 도정에서 도출된 전국적 의제를 토론하는 일이나 성실하고 차분하게 도정을 살피고 있다. 두 차례 도지사직에 출마하면서 지방정부에서 경험을 살려 실력을 쌓는다면 대한민국을 이끄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공언해 왔다. 도정을 충실하게 살피는 것이 대한민국을 이끌 수 있는 전제조건이라 생각하고, 도민들도 흔쾌히 받아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 프로필

안희정(51) 충남지사는 1980년대 운동권 출신으로 1989년 김덕룡 국회의원 비서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운동권 사상에 심취해 고교를 2번이나 중퇴할 만큼 청소년기부터 혁명을 꿈꿨다고 한다. 1994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사무국장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첫 인연을 맺었다. 2001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 경선캠프 사무국장을 맡아 참여정부 출범에 기여했다.

2007년 대선 패배 직후 ‘친노 폐족’을 선언했으나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인 2008년 7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됐고, 다시 2010년 민주당 최초로 충남지사에 당선된 뒤 2014년 재선에 성공해 6년여간 재임 중이다.

‘분노와 미움을 내려놓고 더 좋은 민주주의로 가자’는 중도강화적 정치적 소신을 내세우며 야권의 차기 대선주자로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1964년 충남 논산 출생 △남대전고, 성남고 중퇴 △고려대 철학과 △노무현 대통령 후보 정무팀장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 △민주당 최고위원 △민선 5·6기 충남지사

정리=김창희 기자 ch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