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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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동 사회부 차장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한 최순실 씨의 비리 의혹이 연일 터져 나오던 지난달 24일 청와대 문서 40여 건이 최 씨에게 사전에 전달됐다는 사실을 한 방송사가 보도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만, 속으론 좀 걱정도 됐다. “혹시 청와대 뒷산으로 올라가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그건 박근혜 대통령을 너무 만만히 본 착각이었다. 그 뒤 독일로 도망갔던 최 씨가 귀국해 검찰에 체포되고 상상도 못 한 국정농단 사실이 계속 나왔지만, 대통령은 의연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긴급체포되고 최 씨가 구속되자 조금 진전된 2차 사과를 했지만,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진 않았다. 말로는 잘못을 통감한다고 했지만 모든 책임을 최 씨에게 돌렸다. 그러다 지난 20일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최순실 국정농단이 사실은 박근혜 게이트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대통령은 아예 검찰 수사 결과를 원천 부정하는 등 상식 이하의 초강수로 나왔다. 박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일일이 독대해 기금 출연을 강권한 뒤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행동대장으로 나서 돈을 걷는 등 조직폭력배의 갈취 같은 벌거벗은 진실이 드러나자 대통령은 법률대리인을 통해 “검찰의 수사 결과는 상상과 추측으로 지은 사상누각”이라고 우겼다. 온갖 범죄를 지시한 내용이 안 전 수석의 수첩과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에 다 기록·녹음돼 있는데도 검찰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믿을 수 없다며 약속했던 검찰 수사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헌법과 법치를 깡그리 무시하는,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품격마저도 내팽개친 모습에 국민은 망연자실하고 있다.

부끄러움이 없기로는 청와대 비서진, 새누리당의 친박(친박근혜)계 지도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두 재단 설립은 정당한 국정 수행의 일환으로 문제 될 게 없다고 주장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두 재단은 주인이 없다. 돈을 낸 대기업도,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재단에 이사진을 파견하지 않았고 운영에도 아무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손을 놓고 있었다. 사실상 자신의 소유가 된 두 재단의 관리를 박 대통령은 최 씨에게 맡겼다. 손을 댈 수 없는 기본재산이 90%로 돼 있는 일반 재단과 달리 두 재단은 이를 20%로 대폭 내리고 운영재산을 80%로 만들었다. 774억 원의 모금액 중 620억 원을 마음대로 써도 되는 비자금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언론의 취재로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으면 재단의 기금은 고스란히 두 사람의 쌈짓돈이 됐을 공산이 크다. 총리,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은 물론 장차관 등 첫 내각 인사안마저도 “최 선생님에게 컨펌” 받은 데선 할 말을 잊게 된다.

박 대통령을 만든 책임을 지고 진작 사라졌어야 할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친박들은 대통령의 위법 행위가 차고 넘치는 데도 불법이 없다고 강변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건 친박들의 혈통인가 보다. 맹자는 부끄러움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지만, 어린아이나 치매 환자처럼 인지가 덜 발달하거나 퇴화한 경우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다. 유아기에 있거나 퇴화기에 있는 듯 부끄러움을 모르는 박 대통령에게 하야를 촉구해봐야 입만 아프다. 가망 없는 요구는 그만 접고 탄핵을 추진하는 게 그나마 하루라도 빨리 정국을 정상화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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