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운명의 숫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최영범 논설위원

한국만큼 숫자가 역사를 대변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격동의 정치가 숫자로 압축된다. 특히 ‘4·19’ ‘5·16’ ‘10·26’ ‘12·12’ 등의 숫자에는 군사 정변으로 집권한 이후 시해당한 직후까지의 파란만장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역사가 함축돼 있다. 딸 박근혜 대통령도 그에 못지않다. 국회의 탄핵 소추안 가결 후 여러 가지 숫자가 부적처럼 따라다닌다. ‘18’은 그의 운명을 상징하는 수가 돼버렸다. 아버지는 집권 18년 만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권총 피격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 후 딸은 18년 동안의 야인 생활을 청산하고 1997년 12월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를 지지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1998년 달성군 보궐선거에 출마해 초선 의원이 된 후 18년 만인 2016년 12월에 헌정 사상 처음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형사 입건돼 탄핵 소추됐다. 더구나 그는 제18대 대통령이며 취임 후 정부조직을 개편해 18개 부처 장관을 두었다. 헌법재판소가 그의 운명을 결정하는 심사기일도 최장 180일로 18이란 숫자가 들어간다. 공교롭게도 그의 대선 득표율 51.6%도 아버지의 집권 ‘5·16’과 일치한다.

표결 결과도 회자된다. 불참 1, 찬성 234, 반대 56, 기권 7명을 배열하면 1234567의 7자리 조합이 되고, 찬성률을 대입하면 불참 1, 찬성 234, 반대 56, 찬성률 78(%)로 12345678의 8자리다. 표결 날짜 9일까지 대입하면 123456789이고, 직무가 정지된 당일 오후 7시 3분을 포함(7+3)하면 12345678910이 된다는 것이다. 억지 춘향 격인 면도 있지만 희귀한 숫자의 우연성에서 탄핵의 정당성과 촛불의 가치를 보상받으려는 심리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4·1·6이란 숫자도 그에게는 악몽이다. 2013년 2월 25일 취임한 이후 꼭 416일째 되던 날인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다. 같은 숫자가 겹친다. 그날의 ‘7시간 의혹’은 결국 탄핵 소추의 한 이유가 됐고, 검찰과 특별검사 수사는 물론 국회 국정조사특위의 조사 대상이 돼 두고두고 그를 괴롭히고 있다. 세월호 사고 이후 국회 탄핵까지 대략 1000일(968일)이 걸렸다. 영국 성공회를 탄생시킨 계기가 된 16세기 튜더 왕조 헨리 8세의 왕비로 권력을 누리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1000일의 앤’을 연상케 한다. ‘12·9’의 불행이 반복돼선 안 된다. 짙은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