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치권의 외교·안보 合意 뒤엎기, 국익에 反한다

한반도 강점 등 일본에 대한 사무친 감정과, 최근 일본의 역사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을 생각하면 전국민이 반일(反日)투쟁에 나서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국제관계는 냉정한 현실이고, 전쟁이 아닌 외교를 통해 국익의 극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감정에 따라 화끈하게 대응하면 당장 속이 시원할지 모르지만 금방 국익을 훼손하는 결과를 자초하게 된다. 정부의 종합적 판단에 따라 이미 국가 간 합의(合意)를 뒤엎는 경우엔 더욱 그렇다. 정치지도자라면 이런 외교의 상식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 특히 야당의 움직임은 대선 득표전을 의식한 외교·안보 포퓰리즘을 걱정해야 할 정도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9일 “소녀상에 딴죽 거는 아베에게 10억 엔을 돌려주라”는 자극적 표현을 동원했고, 문재인 전 대표는 “기존 합의는 무효”라고 말했다. 그런 생각이라면 지금 합의를 흔들기보다 집권 뒤 종합적 검토를 한 이후에 해법을 모색해야 국익 훼손을 줄일 수 있다. 국가 간의 합의를 함부로 파기하면 국제사회에서 신용 불량국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특히, 일본의 ‘골대 이동론’에 힘을 실어주게 될 것이다. 물론 잘못된 합의나 노선을 시정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어떤 수단으로 어느 선까지 얻어내겠다는 면밀한 전략과 대책이 앞서야 한다. 또, 한·일 문제는 한·미 관계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사드 문제도 마찬가지다. 사드는 미국이 주한미군 등 한반도 전력(戰力)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 예산으로 한반도에 배치할 예정인 미국의 전략 자산이다. 그리고 현재 사드보다 효과적인 북핵·미사일 방어 무기는 없다. 그런데 효용에 한계가 있다느니, 중국과의 공조를 어렵게 한다느니 하며 한·미 양국이 합의한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뒤엎으려는 정치 세력이 있다. 이들은 중국의 보복은 두려워하면서도 동맹국 미국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다. 현재 한반도 주변 정세는 매우 엄중하다. 9일 중국 군용기 10여 대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4~5시간 가량 침범했다. 그런데 전략도 후폭풍에 대한 대책도 없이 외교·안보 문제를 국민 감정으로 해결하려 든다면, 이는 국익에 반(反)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