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이다>“8년간 알코올의존 방황… 가족사랑으로 극복하고 ‘희망詩’ 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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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의존자 돕는 ‘불광동 시인’ 김발렌티노 씨

‘그 누가 내게／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내리꽂는／저 심지 하나 박아다오’.

알코올의존증에 빠져 8년 동안 4차례 정신병원에 입원하며 삶을 포기하려 했던 한 남자가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참회하며 쓴 시다. ‘불광동 시 배달부’로 불리는 김발렌티노(58·사진) 씨. 그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술에 취해 새벽에 집에 들어갔는데 아내가 추운 방에 앉아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무너져내렸다”며 “‘이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자괴감에 또 술을 마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날 아내의 신고로 네 번째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됐다”며 “병원에서 아내의 기도를 생각하며 나를 모두 태워달라는 의미의 시를 썼다”고 덧붙였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김 씨는 대학 1학년이던 1978년 시문학에 자신이 쓴 시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졸업 후 신문사에 입사해 기획부에서 근무하며 결혼을 했고, 두 아들도 낳았지만 어머니가 황망하게 돌아가신 것에 충격을 받아 술에 빠져들었다. 그는 “장례식장에서 나오자마자 편의점으로 달려가 술을 사서 마셨고, 그때부터 맨정신으로는 살 수 없었다”며 “두세 차례 죽으려고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김 씨는 이제 술을 끊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알코올 의존자들을 돕고 있으며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도 하고 있다. 그는 “2010년 병원에 있는데 큰아들이 편지를 보내왔다”며 “‘아버지는 나의 반짝이는 별. 나는 아버지를 반짝이게 하는 밤하늘’이라는 내용을 보고 밤새 울었다. 그리고 술을 안 마시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큰아들이 어머니를 설득해 병원에서 나오게 된 그는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병원에서 나와 가족들에게 큰절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아버지와 남편 자격을 포기합니다’라고 말했다”며 “대신 내가 멋진 사람이 돼서 돌아온다면 다시 받아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에 자신의 사연을 올려 후원자들이 보내준 돈으로 카페를 차린 김 씨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후 세례명으로 개명까지 했다. 그는 “후배가 알려줘 인터넷을 통해 카페 보증금을 모았다. 1만 원씩 보내준 중학생과 할머니도 있었고, 의자와 LP 판을 보내주기도 했다”며 “유혹을 곁에 두고 참기 위해 카페를 차렸고, 세례명도 술 이름과 비슷한 발렌티노를 선택했다. 술을 끊은 게 아니라 계속 참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런 사유를 써서 법원에 개명 신청을 했고, 2012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개명 허가 결정문을 받았다”며 “카페 이름도 나처럼 망가졌던 사람들은 다 오라는 의미로 ‘인생은 아름다와라’로 지었다. 알코올 의존자들이 카페에 찾아와 도움을 청한다”고 말했다.

술을 끊으며 뭔가에 집중하기 위해 매일 일기를 썼고, 한지에 붓으로 시를 써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한 김 씨는 지난 4∼17일 명동성당 내 갤러리 1898에서 시화전을 열었다. 그는 “시를 나눠주며 ‘시 배달부’라는 별명이 붙었다. 또 그동안 쓰고, 그려놓은 55점의 시화를 전시했다”며 “작품이 많이 팔리진 않았지만 수익금을 청년 사업자금으로 기부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지금 젊은 친구들과 킥킥브라더스라는 3인조 밴드 활동도 하고 있다”며 “이래저래 청년들에게 빚을 많이 지고 있어서 앞으로도 다양한 문화활동을 통해 청년들을 응원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 씨는 “지금처럼 살다 보면 아내와 아이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