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고 가슴 아픈 역사와의 화해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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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출신 작가 박성훈, 판타지 소설에 시국 풍자 담아

“소설을 쓰다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10월 24일 날짜도 기억합니다. 한동안 멍하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는데 어느 순간 뭔가 머리에 꽂히더군요. 문학적 단죄! 이번 소설은 그렇게 해서 나온 겁니다.”

변호사 출신의 박성훈(67) 작가가 지난 17일 펴낸 ‘대통령의 귀는 당나귀 귀’(천의무봉·사진)가 국정농단 사건을 풍자한 내용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대통령의 귀는 당나귀 귀’는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판타지 소설이다. 박 작가는 지난해 초부터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앞서 출간한 어린이 동화 시리즈를 성인용으로 확장한 것이었다. 우리 고유의 설화와 전래동화에서 착안한 선과 악의 캐릭터들이 현실과 이야기 세계를 넘나들며 펼치는 모험을 담았다. 대표적인 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은 설화다.

그런데 국정농단 사건이 소설의 방향을 바꿔놨다. 선과 악이 대결하는 판타지에 여성 대통령 이야기를 추가했다. 그리고 그 여성 대통령이 사악한 악마의 조종을 받아 국가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내용을 더했다. 등장 인물의 이름만 다를 뿐 누가 봐도 지금의 시국을 풍자한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저처럼 충격 받았을 독자들에게 이 소설이 힐링할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박 작가는 군대에서 법무관으로 예편한 후 전공을 살려 지난 20년 동안 변호사로 일했다. 나이 40세 즈음에 잠시 변호사 일을 놓기도 했으나 본업은 변호인이었다. 그러다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게 7년여 전. 변호사에서 은퇴한 후부터는 자유로운 상상의 날개를 폈다. 필명도 쉽고 친근한 ‘머저리 보보’라고 지었다.

“죄 많은 사람을 죄 없는 사람으로 변론하다 보니 거짓말이 많이 늘었어요. 그래서 깊은 고민을 한 끝에 도달한 곳이 판타지의 세계입니다. 판타지에선 거짓이 참이고, 참이 거짓이에요. 당나귀 귀 이야기로 부끄럽고 가슴 아픈 역사와의 화해를 시도하고 싶습니다. 대통령이 당나귀 귀처럼 귀를 크게 열고 국민의 소리를 받아들이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