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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Her Story 게재 일자 : 2017년 03월 15일(水)
“과학기술을 경제발전 도구로만 여기는 한 노벨상은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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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만난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은 “회원들의 참여가 나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만큼 소통과 융합, 신뢰를 키워드로 과총의 새 역사를 쓰겠다”고 역설했다.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올해는 1966년 태동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가 반세기 역사를 뒤로하고 새로운 반세기를 시작하는 첫해다. 과총은 뜻깊은 첫걸음을 이끌 수장으로 여성 회장을 선택했다. 과총 역사상 처음이다. 중책을 맡은 이는 김대중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지낸 김명자(73) 회장이다. 지난 1일 취임해 3년 임기를 시작했다. 취임 직후 인터뷰 요청을 위해 전화했더니 한창 회의 중이었다. 열정적으로 일하기로 소문난, ‘둘째가라면 서럽다’ 할 정도의 일복을 타고난 김 회장은 취임 초부터 무척이나 바빴다고 한다. ‘워커홀릭(workaholic·일 중독자)이라는 소문이 과언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확인한 셈이다. 헌법재판소가 현직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내린 지난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국과학기술회관 과총 회장실에서 김 회장을 만났다. 인터뷰 시간을 세 차례나 조정한 끝이었다. 이날 역시 회장실 옆 회의실과 사무실에서 2개의 회의가 동시에 진행 중이었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간신히 몸을 뺀 김 회장과 만났으나 뜻밖에도 차분했다.

―과총을 3년 동안 이끌게 됐다. 목표가 있다면.

“과학기술 인력은 각 분야에서 집중도 있게 전념해야 해 사실은 과총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는 게 어렵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우리 과총 회원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분야 간, 세대 간, 지역 간 벽을 허물고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구현하는 것에 힘쓰고자 한다. 소통과 융합, 신뢰를 키워드로 삼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생애 마지막 프로젝트라 여기고 모든 역량과 열정을 쏟을 생각이다.”

―과총 첫 여성 회장이다. 유리천장을 깼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최근 과학기술계에서 여성 활약이 눈에 띄지만, 정규직 비중은 20% 미만이다. 여성 과학자들의 일·가정 양립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 여성만의 문제로만 다뤄질 성격의 일이 아니다. 문제를 공감해야 문제 해결의 협력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여성과 남성 사이 소통에 힘을 쏟을 생각으로 ‘과학기술젠더네트워크’라는 조직을 새로 만들었다.”

과학기술젠더네트워크는 여성 과학기술 단체뿐 아니라 남성 중심 학회나 단체들과 네트워킹을 구축해 과학기술계 젠더(gender) 문제를 논의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김 회장이 새로 만든 조직은 과학기술젠더네트워크만이 아니다. 20개 가까운 신설 조직을 만들었다. 핵심은 네트워킹과 협업, 그리고 소통이다.

―신설 조직이 많다.

“위원회급 조직이 31개 있는데, 새로 생기는 조직이 19개다. 태스크포스(TF) 4개, 현장에서 해법을 찾아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는 ‘솔루션네트워크’ 5개, 이슈포럼 4개와 부설기구 3개가 새로 생긴다.”

신설 TF 조직 가운데 학술지발간지원TF는 영문 학술지 발간이 보편화하는 학계 현실에 대한 반성에서 논의가 시작됐다고 한다.

“세계화가 아무리 중요하다지만 우리말로 된 학문 전통을 이어가지 못하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학술지들이 저작권 관리 같은 것이 편하다고 해외 출판사에 아주 많이 의존하고 있다. 정부가 19조 원의 연구·개발(R&D) 예산을 투입하는데 과학기술계가 학술지 발간 업무 같은 것을 해외에 의존하는 게 옳은 길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솔루션네트워크 중에 ‘과학기술세대간네트워크’나 ‘청년일자리네트워크’는 어떤 일을 하나.

“사회 전반적으로 세대 간 소통이 아쉽다는 지적이 많은데, 과학계도 마찬가지다. 세대 간 네트워크는 시니어와 젊은 세대 사이 소통의 역할을 하게 된다. 로봇과 인공지능(AI)이 결합돼 다음 세대 일자리는 더 역동적으로 변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청년일자리네트워크는 605개 과학 기술분야 단체와 산업기술 현장의 네트워킹으로 청년 일자리 해법을 모색하는 역할을 한다.”

취임한 지 열흘 된 김 회장이 어떻게 이런 조직 개편 아이디어를 구상할 수 있었을까. 회장 취임을 준비하며 과학기술계 인사 600여 명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이미 지난해 2월 과총 이사회에서 83표 중 60표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차기 회장으로 선출됐다.

여러 과학계 인사를 만났다니 현재 과학계의 ‘뜨거운 감자’인 헌법 개정에 대해 물었다. 과학계에서는 헌법 127조 1항이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과학을 경제 발전의 수단이나 도구로만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전쟁을 겪었고, 잿더미를 극복하는 상황에서 과학은 경제성장의 도구라는 생각이 강했다.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과학기술이 어떤 것을 할까 이런 고민을 많이 했다. 과학기술인들도 거부감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과학적 합리성이 상당히 필요해졌고,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과학을 경제성장의 도구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매해 10월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한국은 R&D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는데도 수상자 하나 내지 못한다고 비판받는데, 과학기술을 경제성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노벨상 수상은 요원하다는 설명이었다.

쉽사리 이뤄지기 힘든 ‘개헌’의 문제까지 김 회장의 입을 통해 들으니 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그가 환경부 장관으로 일하며 보여줬던 리더십 때문인 듯했다.

김 회장은 1999년 6월부터 2003년 2월까지 환경부 장관을 지내 최장수 여성 장관으로 기록돼 있다. 수많은 민원이 제기되는 환경부 장관을 3년 8개월이나 했다. 2001년 낙동강 수계관리 특별법 처리 때는 자기 모습을 본뜬 인형의 화형식까지 지켜봐야 했다.

―그때 기분이 어땠나.

“환경부 장관이 된 것이 1999년이니까 55세였다. 일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 교실이라는 닫힌 공간에 있던 교수와는 다르게 상당히 부딪혀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래도 결정적으로 ‘못해먹겠다’ 그런 기분은 아니었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래도 풀지 못한 게 없었다.”

김 회장은 당시 2만3000장의 편지를 써 주민들을 설득했고, 주민들로부터 동의를 받고 나서도 편지로 고마움을 전했다. 주민들로부터 의견을 듣고 입장을 설득하는 ‘소통’을 무기로 삼은 것이다.

인터뷰 날 헌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김 회장의 소회가 남다를 법해서 바람직한 리더십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주저 없이 “합리성과 감성의 거버넌스 리더십”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부가 국민을 통치하는 거버먼트(government) 시대가 아니라 정부와 시민사회가 공공의 목표를 향해 함께 의사결정을 하는 거버넌스(governance) 시대가 됐다. 거버넌스에 의해 국가 정책도 결정하고, 결정을 실행하는 데 있어 시민사회와 함께 가야 한다. 정책에서 합리성이 빠지면 정책이 될 수 없다. 체계성이나 논리성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정책 수요자인 고객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까지 계획에 들어있어야 리더십이다. 합리성과 감성은 상충되는 요소인데 융화시키는 리더십이 매우 중요하다.”

김 회장 인생에서 치열함을 빼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일할 때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물었더니 “일이 없으면 허전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더니 대뜸 오른손을 내미는데 가운뎃손가락 첫 번째 마디 부분이 움푹 들어가 있다. 김 회장은 “글을 쓸 때 펜을 꽉 잡는 버릇이 있는데 1979년, 1980년 무렵 한창 번역할 때 생긴 자국”이라고 했다. 당시 오른손 엄지손가락 인대가 늘어나고 난시가 오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그는 1972년 서울대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1974년부터는 숙명여대 조교수로 일했다. 숙명여대 전임교수이면서 동시에 서울대 강사를 10년이나 했다. 일요일도 쉬지 않고 학교에 나갔단다. 우연히 세 자녀 모두 방학 기간 출산했을 정도로 ‘일복’이 많다고 했다.

김 회장은 과학기술 진보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 문제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산업과 경제, 고용, 사회나 정부 형태까지 바꿀 것으로 예상되는 4차 산업혁명의 파괴적 혁신을 적절히 관리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분절과 고립, 배제 현상은 국가적 부담이 될 것”이라며 “국가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불러올 불만과 좌절로 인한 갈등을 예방하고 대응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 성패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장석범 기자 bu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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