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타인의 방’ 속 주요 공간인 야마토 아파트는 서울 충정로에 있던 독신자 아파트 경성대화숙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지금 그 자리에는 1969년 세워진 미동 아파트가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73) 최인호 소설 ‘타인의 방’ 이 담아낸 아파트
최인호의 소설 ‘타인의 방’(문학과지성, 1971년 봄호)은 도시화로 인해 본격화된 인간 소외의 문제를 작가의 빛나는 감성으로 형상화한 명작이다. 동시에 그 당시 주거공간으로 일반화되기 시작한 아파트를 전면적인 배경으로 삼았기에 ‘아파트 소설’이라고 불려도 전혀 손색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2017년 지금, 특별한 감흥을 느끼기 힘들 정도로 아파트는 보편화되었다. 2000년 이후 새로 지어지는 주택 중 85% 이상이 아파트이며, 구입하고 싶은 주택유형의 70% 가까이가 아파트라는 통계도 있다. 문학에서도 배경으로 아파트가 나오지 않는 소설을 찾는 것보다 아파트가 등장하는 소설을 찾는 것이 더욱 쉬울 정도가 되었다. 아파트가 이토록 가파른 속도로 한국 주거문화의 중심이 된 이유는, 짧은 시간 동안 빨리 많이 지을 수 있다는 아파트 고유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해방 이후 30여 년 만에 거의 10배가 증가한 서울의 인구 (1945년 해방 직후 100만 명이 채 안 되었던 서울의 인구는 1970년대 말에는 무려 1000만 명에 이르렀다)로 인한 주거난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파트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었다.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계획의 하나로 아파트 건축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고, 그 대표적인 산물이 바로 한국 최초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마포아파트(6층 높이의 총 642가구)이다.
최인호가 ‘타인의 방’을 쓴 1971년은 한국 아파트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로 기억할만하다. 이 해에는 12∼13층으로서 당시 기준으로는 초고층 아파트였던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그 이전까지 주택난 해소를 위해 지어진 서민주택 정도로 경시되던 아파트가 중산층이 선호하는 고급스러운 주거 유형으로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아파트는 우리 삶에 더욱 깊이 파고들어 1975년에는 뉴타운의 시초라는 잠실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었고, 1991년에는 분당, 일산 등에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이루어진 신도시가 건설되기도 하였다.
최인호 이전에 아파트를 문학의 공간으로 끌어들인 작품이 한국문학사에 없는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말기의 대표적인 전향소설(사회주의자였다가 그 신념을 포기한 작가의 작품 중에서 전향 문제를 다룬 작품)인 김남천의 ‘경영’(문장, 1940.10)과 ‘맥’(춘추, 1941.2) 연작에도 이미 아파트가 주요한 공간으로 등장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 ‘타인의 방’ 의 한 장면.
이 작품에는 자신의 신념에 바탕을 두고 전향한 오시형, 오시형의 연인으로 그의 옥바라지까지 했지만 배신당하는 최무경, 제국대학 영문과 강사였던 이관형이 등장한다. 이때 주인공 최무경이 사무원으로 일하는 곳이 바로 아파트인 까닭에, 아파트는 자연스럽게 주요한 문학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작품 속에서 그것은 “죽첨정에 있는 야마토 아파트”로 설명되는데, 죽첨정(竹添町)은 1884년 갑신정변 때 일본공사였던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郞)의 성을 따서 붙인 ‘충정로’의 일제강점기 명칭이다. 김정동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이 야마토 아파트는 죽첨정 3가에 있는 일제시대 식산은행의 독신자 아파트 경성대화숙(京城大和塾)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김정동, 문학 속 우리 도시 기행2, 푸른역사, 2005, 125면)
흥미로운 것은 작품 속의 야마토 아파트가 호텔식이라는 사실이다. 독신용이 36가구에 가족용은 25가구이며, 아래층에는 사무실, 구내식당, 목욕탕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공동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호텔식 아파트는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형태를 가져온 결과이다. 야마토 아파트가 있던 충정로에는 일본인에 의해 지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인 도요다 아파트(1930년대 준공)도 있었다. 아파트 소유주인 도요다 다네요(豊田種松)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 아파트는 지하 1층, 지상 4층에 연면적 1050평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건립 당시에는 서울을 대표할만한 첨단의 대형 건물이었다. 이후 유림이라는 이름을 거쳐 현재까지 충정아파트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이후 아파트는 실제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여 1970년대부터 문학의 공간으로 자주 등장한다. 이때의 아파트는 조정래의 ‘비탈진 음지’(1973)에서처럼 상경민의 시선이나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이나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1977)에서처럼 영세민이나 철거민의 시각에서 그려졌다.
‘비탈진 음지’에서 이제 막 상경한 촌사람의 눈에 아파트는 “머리 위에서 불을 때고 그 머리 위에서 또 불을 때고, 오줌똥을 싸고, 그 아래에서 밥을 먹고, 그러면서 자식을 키우고 또 자식을 낳고, 사람이 사람 위에 포개지고 그 위에 또 얹혀서 살림을 하고 살아가는 곳”으로서, “징상스러운 인종들”에게나 어울리는 곳이다. 그러나 그곳은 “상상할 수조차 없도록 비싼 것”으로서 이제 막 상경한 촌놈은 감히 소유해 볼 엄두도 낼 수 없는 고가의 물건이기도 하다.
최인호는 상경민이나 철거민이 아닌 아파트에 사는 내부자의 시선으로 아파트의 속살을 그려낸 최초의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최인호는 ‘타인의 방’을 통해서 아파트를 단절과 소외의 대표적인 공간으로 파악하였다. 이제 막 아파트가 퍼져나가던 시점에 그 치명적인 매력과 어둠을 예민한 작가적 감성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출장에서 다녀온 그는 아내도 없는 빈 아파트에서 무력감과 우울함에 시달리다가 물건을 거쳐 결국 잡동사니로 전락해간다.
‘타인의 방’에 등장하는 아파트는 이상의 ‘날개’에 등장하는 방처럼 소외되고 단절된 공간이다. 그러나 ‘날개’의 주인공이 경성 시내를 향해 수차례의 외출을 시도하고 나중에 비상하려는 의지까지 보여준 것과 달리 ‘타인의 방’의 그는 결국 사물이 되어 주저앉고 만다. 작품 속의 아파트는 ‘나의 방’이 아닌 ‘타인의 방’이며, 거짓으로 그를 따돌리는 아내마저도 이 공간에서는 ‘나의 아내’가 아닌 ‘타인의 아내’일 수밖에 없다. 방의 주인인 그가 사물이 되는 것은 결국 이 공간에서는 그조차 그 자신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 아파트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거울, 소켓, 옷, 샤워기, 성냥개비, 크레용, 트랜지스터 등의 사물들이다. 방의 주인은 사물이 되고 사물은 살아서 주인 노릇을 하는 이 통렬한 아이러니 속에는, 자신을 행위의 주체로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이질적인 존재로서 경험하는 현대인의 소외가 섬뜩하게 아로새겨져 있다.
“그는 아파트 계단을 천천히 올라서 자기 방까지 왔다”나 “그는 화가 나서 투덜거리면서 방문 열쇠 구멍에 열쇠를 들이밀었다”라는 문장에서처럼, 이 아파트는 그에게 시종일관 ‘집’이 아닌 ‘방’으로 인식된다. 집이란 여러 방을 아우르는 공간으로서 거기에는 타인이 스며들 최소한의 여유가 있다. 그러나 방에는 오직 ‘나’ 혹은 기껏해야 ‘아내’만을 허용할 수 있을 뿐이다. 처음 그가 “너무 피로해서 쓰러져버릴 것 같은” 거리에서 돌아와 “자기 방”(아파트)으로 향할 때, 그의 머리를 채우는 것은 오직 문을 열어주고 자신에게 따뜻한 음식을 대접해 줄 아내뿐이다. 그는 열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분 동안이나 초인종을 누르고 거의 부숴버릴 듯이 문을 두들겨대며 애타게 아내를 찾는다. 그러나 아내는 결코 나오지 않고, 대신 아파트의 이웃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들은 삼 년이 지나도록 서로 얼굴조차 마주친 적이 없는 머나먼 타인들일 뿐이다. 방으로 표현되는 아파트란 본래 핵가족을 위해 설계된 것이며, 그 공간에서 아내가 아닌 옆집 사람은 불청객일 뿐이다. 그렇기에 그는 수많은 이웃을 옆에 두고도 아내가 없다는 이유로 감당할 수 없는 우울과 무력감에 빠지는 것이다.
아파트란 아이러니한 공간이다. 어떠한 주거시설보다 일정한 공간 안에 많은 사람을 모아놓지만,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외로움과 단절감의 정도는 오히려 더욱 심해진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아파트가 단지 외부와 분리되는 것에서 비롯되며, 이차적으로는 수백 혹은 수천 가구가 똑같은 형태의 공간에서 비슷하게 가구를 배치하고 유사한 동선을 그리며 살아가는 것과 관련된다. 아파트는 그 외형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의 경험까지 동질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며, 그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과 의미를 발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전제적인 하나의 지배 속에서 인간은 단조롭고 창백한 실존을 영위하는 왜소한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최인호의 ‘타인의 방’이 창작된 때로부터 약 45년이 지났지만 단절과 불통의 상징과도 같았던 작품 속 아파트의 성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주변과 조화되지 못한 채 망망대해의 섬처럼 고립된 아파트 단지의 모습이나 개성 없이 규격화된 형태의 내부 모습은, 외부와 단절된 채 ‘외로운 사업’에 골몰하는 소외된 현대인의 모습과 닮아있다. 거기에 더해 아파트는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구별 짓는) 가장 핵심적인 상징적 기호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아파트는 부의 척도를 넘어서 자존의 근거로 작동하기에, ‘나’와 가족이 살아가는 수단이 아니라, ‘나’와 가족이 쟁취해야 하는 목적이 되어 버렸다.
이홍의 단편소설 ‘삼인구성의 가정식 레시피’(2011)에서는 아파트값을 올리기 위해 교육센터를 유치하려는 일반 주민들의 뜻에 반대하는 한 여성이 불에 탄 주검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이 죽음에는 아파트값을 올리기 위해 반상회 활동에 열성인 주인공의 아내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강하게 암시된다. 아파트란 이웃의 목숨보다도 중요한 우리 시대의 물신(物神)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번 달에 발표된 조남주의 Flash Fiction(분량이 매우 짧은 소설) ‘운수 좋은 날’(2017)에서 민정은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갔을 때, 그곳의 과장이 “이건 27평형인데, 34평하고 구조는 똑같으세요, 작은 방 두 개를 터서 오픈형 책장을 가벽 대신 설치하신 거고요, 안방 베란다 말고는 다 확장하신 거예요. 구조가 워낙 좋으셔서 세 식구면 사실 27평으로 충분하세요”라며 아파트를 향해 극존칭을 사용하는 장면과 조우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파트는 한탄이나 비판만 하며 외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인구밀도 최고 수준인 우리에게는 미우나 고우나 함께 동고동락해야만 하는 주거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미 건설된 주택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이며 새로 지어지는 주택의 80% 이상이 아파트인 상황에서, 대부분의 한국인은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사랑을 배우고 아파트에서 죽어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실제로 최근에 아파트에서 유년기를 보낸 아파트 키드들이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책(‘안녕, 둔촌주공아파트’ ‘과천주공아파트 101동 102호’ ‘고덕주공, 마지막 시간들’)까지 발간하는 현상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이것은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이들에게 아파트는 성냥갑이 차곡차곡 쌓인 모습의 회색 물신이 아니라 안정감과 정체성의 원천으로 기능하는 특별한 장소(고향)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45년 전 최인호가 날카로운 작가적 감성으로 그려낸 고독과 우울의 아파트를 새로운 나눔과 소통의 진정한 삶터로 바꾸어나가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경재 숭실대 국문과 교수
;){kind=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