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식 기자의 버디 & 보기>골프의 본질 위협하는 美國골프의 힘

골프규칙은 4년마다 바뀝니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렉시 톰프슨의 벌타 사건으로 세계골프규칙을 관장하는 영국왕실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벌타 사건 발생 한 달도 채 안 돼 서둘러 규칙을 개정했습니다. 이례적이라는 평가입니다. 물론, 지난해 US오픈에서 더스틴 존슨이 바람에 의해 볼이 움직였는데도 벌타를 받자 곧바로 규칙을 변경한 사례도 있습니다. 이번 사건 이전에도 고화질 카메라 등장으로 선수 모르게 발생한 규칙 위반에 대해 선수들의 불만의 컸기에 선수 편에서는 당연한 결과라는 입장입니다.

공교롭게도 미국 선수가 연루된 사건입니다. 이로 인해 이번 규칙 개정은 미국 골프의 입김이 그만큼 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난해 US여자오픈 연장전에서 안나 노르드크비스트(스웨덴)가 연장 두 번째 홀에서 벙커샷을 하면서 중계화면을 통해 미세하게 모래를 건드린 화면이 포착됐습니다. 마지막 홀에서 2벌타가 주어지면서 브리타니 랭(미국)이 우승을 차지하자 미국 언론이나 미국 선수들은 침묵했습니다. 이번 벌타 사건과는 확연히 대비됐습니다. 사실 사건의 팩트는 톰프슨이 ‘공을 제 위치에 놓지 않았다’는 사실, 그 하나뿐입니다. 이런 경우 선수 스스로 벌타를 신고해야 했지만, 누구도 알아채지 못해 그냥 넘어갔던 것인데 다음 날 시청자 제보로 ‘진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톰프슨은 이 부분에서 ‘몰랐다’ ‘고의가 아니었다’라고만 할 뿐 규칙 위반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며 눈물로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이번 벌타에 대해 LPGA투어를 맹비난했던 타이거 우즈 역시, ‘반칙왕’이었습니다. 우즈는 2013년 경기 도중 숲에 들어간 공을 치기 전 나뭇잎을 치우다 공을 움직인 사실이 중계 화면에 적발됐지만, 경기위원이 달려와 위반 사실을 알리고 뒤늦게 2벌타를 받았습니다. 톰프슨이나 우즈 등 선수들은 자신의 잘못 대신, 시청자 제보를 받아주는 규정만을 문제 삼아 왔습니다.

지난해 스페인의 7살짜리 소년 골퍼가 어린이 골프대회에 나가 우승했지만, 스코어카드를 잘못 적은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우승컵을 받을 자격 있는 다른 선수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양심 고백을 했습니다. 이런 양심적 행동이 지금까지 골프가 인기를 끈 이유이기도 합니다. 골프는 누구에게나 공정한 형평성을 첫 번째 덕목으로 칩니다.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골프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이번 규칙 개정을 보면서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골프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힘의 논리만 확인시켜 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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