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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오승훈 경제산업부장 게재 일자 : 2017년 05월 01일(月)
진화하는 알파고, 퇴화하는 ‘규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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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경제산업부장

“외로워.” “언제나 제가 함께한다는 사실 잊지 마세요.” “너 어디니?” “여기 있잖아요.” “너 몇 살이야?” “먹을 만큼 먹었어요.” “너 어디서 오빠한테 꼬박꼬박 말대꾸야?” “그럴 수도 있죠.”

얼마 전 TV 예능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혼자 태블릿PC에 말을 거는 장면이다. 상대는 애플의 음성인식 서비스 시리(Siri), 2011년부터 다섯 번째 업그레이드 만에 이 정도 ‘음성 비서’로 발전했다. 새 기술에 둔감한 사람들은 “신기하네”라고 감탄했지만, 여기까지도 인공지능(AI)이라 부르기엔 아직 부족하다. 삼성전자 S보이스, LG전자 Q보이스, 구글 나우처럼 아직은 지도(指導)학습형에 가깝다. 가르쳐준(저장된) 문답을 수행하는 수준이다.

새로운 ‘진보’가 1일 시작됐다. 삼성전자가 이날부터 신작 스마트폰 갤럭시 S8을 통해 업그레이드 서비스를 개시한 ‘빅스비(Bixby)’다. 대화의 맥락까지 이해하는 본격적인 AI다. 여자 친구가 구두 사진을 보여주며 “이거 예쁘지?” 라거나, 밑도 끝도 없이 “배고파”라고 하면, 모두 뭔가 “사달라”는 의미인 것을 안다. 이는 데이터의 힘이다. 데이터는 생성(센서, 사물인터넷)-저장(클라우드)-분석(빅데이터)-가치생성(AI)의 단계를 순환한다. 소비자가 접하는 AI는 사람과 소통하며 배우고, 이를 저장·분석해 더욱 똑똑해진다. 스스로 학습하는 기술, 딥러닝(Deep Learning)이다.

빅스비도 처음에는 사용자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이 단계를 순환하면서 점점 강력해진다. 올 하반기에는 애플의 시리도 아이폰8 출시와 함께 음성 AI의 대열에 선다. 그 기술은 이미 스마트폰 기반의 대화형 개인비서에서 스피커형 홈 허브로, 로봇으로, 의료 서비스로 확산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막연한 미래도, 다른 곳에 있지도 않았다. 지금, 내 몸에 찰싹 붙어 있는 스마트폰에 있다.

1년 전 이세돌 9단과 구글 AI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1승 4패의 전적으로 끝나자, 모두가 “기계가 지배하는 시대가 멀지 않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산업부터 노동 시장, 사회문화, 가치관까지 뒤바꿀 파장과 위협에 대한 경고가 난무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갖가지 정책을 쏟아내는 시늉을 했으나 투자 규제나 정보이용 규제도, 수용성 문화도 제자리다. 당면 현안인 기술 투자·교육 혁신을 통한 인재와 산업 육성 비전, 노동시장 재편과 정보 사회안전망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는 뒷전이다. 심지어 ‘핀테크’의 총아로 초반 돌풍을 일으킨 인터넷전문은행은 은산(銀産)분리의 잣대에 가로막혀 도로 ‘구식 은행’으로 뒷걸음질을 할 처지다.

4차 산업혁명에서 정부의 역할은 3차 산업혁명 시대와 달라야 한다. 정부는 간섭자가 아닌 민간의 핵심 파트너여야 한다. 정부가 스타트업들의 투자자가 돼야 하고, 관련 기관들은 혁명의 산실이 돼야 한다. 이것이 규제 철폐로 자유로워진 민간의 투자, 교육과 결합해 시너지를 내고, 기술 발전과 대중화(분배)로 이어져야 한다. 누가 주도하느냐가 아니라 정부·민간의 협업 성공 여부가 관건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발이 된 인터넷의 기원이 미국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의 컴퓨터 연결망이었고, 애플의 시리가 탄생한 것도 같은 기관에서 연구한 AI프로젝트의 일부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도 민간의 고군분투로 이 정도까지 왔다. 삼성전자가 빅스비로 음성 AI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은 애초 애플 시리를 개발했던 미국 실리콘밸리의 비브랩스를 지난해 인수한 덕분이다. 기술이식 인수·합병(technology grafting M&A) 전략이다. 기업은 기를 쓰고 뛰는데, 정부가 앞뒤 분간도 못 하고 뜬구름만 잡아선 안 될 일이다.

5·9 대선의 4차 산업혁명 관련 공약은 고작 ‘정부 주도’냐 ‘민간 주도’ 정도다. 입으로는 4차 산업혁명과 미래를 열 대통령을 외치지만 선두 문재인 후보부터 제1 공약이 촛불 혁명에 적폐 대청소 등 ‘과거’다. 안철수 후보가 IT 전문가 출신답게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보이지만 큰 그림은 보이지 않고, 그나마 지지율 정체에 발목이 잡혀 있다. 알파고는 그동안 최고수들과 비공식 대국에서 60전 전승을 올렸다고 한다. 이달 말 세계 랭킹 1위 중국의 커제와 공식 대결이 예정돼 있는데, 인간의 승리를 예상하는 사람은 적다. 우리의 ‘퇴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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