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사이다 정치’와 欲速不達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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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서강대 교수 정치학

새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10일 이후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체제에선 없었던 정치의 생기를 느낄 수 있다. 민주주의 정치의 장점인 자정 능력이 발휘돼 그동안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이 선거공약을 실천하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지난 일주일 동안 대통령은 다수의 국민이 개선을 원하는 문제들에 집중했다. 그리고 국정교과서 폐기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등은 새 정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변화로 받아들여졌다. 대통령은 주어진 권한으로 문제들을 즉각 해결하고 있지만, 정작 어려운 문제들은 아직 직면조차 하지 않았다. 사이다 같은 시원한 정치는 취임 축하 기간이면 충분하다.

이제 국가가 당면한 본질적 문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질적 문제인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해 책임총리뿐 아니라 책임장관제를 천명했다. 이를 확립하려면 과거 정부와 달리 청와대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사실 어떤 정부도 대통령과 청와대가 권력을 독점하겠다고 선언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통령의 정책적 의지를 실천하려는 의욕에서 청와대 수석들이 장관 업무에 간섭하고 감독하다 보면 어느새 청와대로 권력이 쏠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권력 분산을 목표로 하고 부처별 자율성을 부여하려면 청와대의 규모를 이전보다 줄여야 한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인적 규모를 늘린다면 권력은 필연적으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성공하려면 욕속부달(欲速不達)의 교훈을 새겨야 한다. 조바심은 늘 일을 그르치게 마련이다. 정권 초기부터 국민에게 가시적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욕구가 클수록 결과 중심적이 되고 내용 부실과 과정 경시가 뒤따른다. 민주주의에서 결과의 타당성은 추진 절차의 적절성 여부에 달려 있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과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라는 슬로건이 사라진 것은 그 속에 내용을 담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롭고 혁신적인 것에 대한 정권의 강박관념이 만들어낸 공허한 정치 구호의 결말이 어떠한지 그 교훈을 얻어야 한다. 또한, 새 정부 임기 내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정치는 질적 변환기를 맞고 있다. 엘리트 주도의 정치는 종말을 고했고, 시민 참여와 동의가 전제되는 공감의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정치의 본질적 문제는 낮은 정치 신뢰다. 특히, 탄핵 국면을 경험하면서 정치 신뢰는 극도로 낮아진 상황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공감이 확대돼야 한다. 구체적으로, 정부 목표에 대한 우선순위를 국민에게 제시하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정 추진 목표를 국민에게 알리고 동의를 획득해야만 대통령은 국정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선거공약으로 적폐 청산과 통합이라는, 얼핏 보면 모순적인 2개의 목표를 약속했다.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되 청산 대상마저 배척하지 않을 때 통합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통합이라는 목표 달성 여부는 국회에서 정당 간 관계가 시험무대가 될 것이다. 만일 여당이 전략적인 정당 연합을 도모한다면 특정 야당의 배제로 이어지고 정당 간 갈등이 격화할 것이다. 자칫 과거 정치의 재연이 될까 우려된다. 촛불의 정치적 결과인 새 정부가 성공하려면 배제의 정치라는 낡은 사고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더욱이 배제의 대상에 국민이 포함된다면 정치는 실패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