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탄생부터 20세기초까지… SF의 아버지가 쓴 세계사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H.G. 웰스의 세계사 산책 /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김희주·전경훈 옮김 / 옥당

‘타임머신’ ‘투명인간’ ‘우주전쟁’ 등을 써 ‘과학소설(SF)의 아버지’로 불리는 H G 웰스(1866∼1946)의 역사서다. 영국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웰스는 장학금 덕에 런던대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과학교사로 일하면서 29세에 쓴 ‘타임머신’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아 바로 대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우리에겐 SF작가로만 알려져 있지만, 웰스는 영국 민중의 삶을 치밀하게 묘사한 소설들을 발표해 찰스 디킨스의 진정한 계승자라 칭송받는 현실참여 작가였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네 번이나 올랐다는 사실은 그가 20세기 초 영국의 가장 영향력있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는 걸 말해준다. 그는 과학기술과 인류의 진보에 대한 에세이도 꾸준히 발표했다.

그가 제1차세계대전을 겪은 뒤 1920년 쓴 책은 소설이 아니고 ‘세계사 대계’라는 3권 분량의 방대한 역사서였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제국주의 시대에 열강들이 시장쟁탈을 위해 경쟁하다 발칸반도에서 충돌한 제1차세계대전은 1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유럽전역을 황폐화시켰다. 웰스는 책에서도 “세계대전이 왜 시작되었는지가 아니라 왜 예방하지 못했는지가 더 궁금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웰스는 세상의 변화를 위해 민중을 교육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했으며, 이에 따라 펴낸 대중적인 역사서가 ‘세계사 대계’다. 웰스의 명성과 책의 대중성으로 이 역사서는 그의 소설 못지않게 많이 판매됐다. 세계 곳곳의 지식인들에게도 이 책은 영향을 미쳤는데, 인도 총리 자와할랄 네루가 집필한 유명한 ‘세계사 편력’에도 웰스의 책이 자주 인용될 정도다.

1922년에 발표된 ‘세계사 산책’의 분량은 ‘세계사 대계’보다 적지만 단순한 축약서는 아니다. 웰스는 서문에서 “‘세계사 대계’를 읽기 위한 개론서로 유용하겠지만, 이 책은 훨씬 더 개괄적인 역사서로 새롭게 기획해 썼다”고 밝힌다.

웰스의 역사서가 특이한 것은 세계사를 지구의 탄생과 인류 이전의 자연사에서부터 시작하는 독특한 구성을 가진 점이다. 그가 생물학을 전공했고 과학에 해박한 이유도 있겠지만, 지구의 생물종에서 인류가 특이한 존재가 아님을 강조하는 듯하다.

2차대전까지 보고 세상을 떠난 그는 인류라는 종이 다른 종으로 대체된다 해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책은 또 유럽 중심이 아니라 동서양을 오가는 균형잡힌 시각으로 역사를 기술한다. 책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흐름을 모두 67개 이야기로 나누어 설명한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