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위장전입’ 적폐 규정해 놓고 양해 당부한 靑 이중잣대

문재인 대통령 공약집의 제1장은 ‘적폐 청산’인데, 5대(大) 비리 관련자의 고위 공직 배제도 주요 항목으로 포함돼 있다.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중 어느 하나에라도 걸리면 기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인사검증법을 제정하겠다고까지 했다. 또, 지금 여당이 야당이던 시절 그 잣대는 추상 같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각종 의혹으로 낙마한 장관급 이상이 9명, 청문 보고서 미채택이 8명에 달했을 정도다. 문 대통령의 이런 단호한 공직관(觀)을 높이 평가하고 지지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첫 인사부터 이런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를 비롯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에게서 모두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났다. 여러 개 해당되는 후보도 있다. 이런데도 문 대통령은 29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야당 의원과 국민께 양해를 당부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공약한 것은 원칙이고, 실제 적용에는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며 비서실에 기준 마련을 지시했다. 29일까지 발표한 6명의 장관급 이상 인사 중 3명이 위장전입에 걸렸으면 이들을 배제하거나 국민에게 공약을 못 지킨 데 대해 사과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공약 파기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정치화됐다”며 야당 탓으로도 돌렸다. 지도자의 메시지는 분명해야 하는데, 문 대통령의 진의는 모호하다. 공약 자체가 지나치게 이상적이어서 수정하겠다는 것인지, 앞으로 이런 일이 없을 테니 이번만 눈감아 달라는 것인지 헷갈린다.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이명박 정부를 비판한 기고는 지금 상황과 더 극적으로 대비된다. 조 수석은 당시 장관 후보의 위장전입에 대해 “좋은 학군으로 이사하거나 주소를 옮길 여력이나 인맥이 없는 시민의 마음을 후벼 파는 소리” 등으로 맹비난했다. 청와대가 시중 유행어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의 이중잣대를 적용하겠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문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고 내부 회의에서 입장을 밝힌 것은, 박 전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을 연상시킬 정도다. 청와대는 더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자세를 보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