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徐遊記>(1143) 55장 사는것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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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한 병을 둘이 나눠 마셨을 때는 밤 11시 반이다. 툭 털어 놓았기 때문인지 조희연은 밝은 분위기였고 잘 웃었다. 그리고 만났던 남자 이야기를 다 해주었는데 정일수의 보고와 맞았다. 이런 상황이 되려면 김광도와의 결혼은 염두에 두지 않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섹스 파트너였죠.”

조희연이 웃음 띤 얼굴로 김광도를 보았다. 불빛을 받은 눈동자가 반짝였고 상기된 얼굴이 요염했다.

“명예회장님께서도 허락해주신 부분이에요. 물론 제가 제의를 했지만요.”

“그렇군요.”

“회장님과도 보완 관계였죠. 저는 따뜻한 분위기와 가끔 일어나는 회장님 욕정을 채워드리는 대신 물질적 보상을 받았죠.”

“난 그런 상대는 수천 명을 보유하고 있지요.”

“알고 있습니다.”

쓴웃음을 지은 조희연이 한 모금 술을 삼켰다.

“거대한 할렘을, 그것도 수백 개 소유하고 계시죠.”

“한번 겪어 보십시다.”

“뭘요?”

“같이 사는 건 정(情)으로 살아야 된다고 하십디다.”

“…….”

“그것이 우리 어머니 말씀이오.”

“그렇군요.”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야 껍질이 단단한 고목처럼 비바람과 상처를 견디면서 세상을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거요.”

김광도가 지그시 조희연을 보았다. 아름답다. 그동안 수많은 여자를 보았지만 이처럼 지적이고 성적 매력이 충만한 상대는 보지 못했다. 그때 조희연이 입을 열었다.

“늦었어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뭘 말입니까?”

“제집에 가시든지요. 그 집에 명예회장님 흔적은 없습니다.”

김광도가 숨을 들이켰다.

“가도 되겠습니까?”

“자격이 있으신 분이죠.”

“가십시다.”

자리에서 일어선 김광도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영광입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반쯤이 지났을 때 김광도는 조희연의 저택 침실에서 가운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앞쪽 탁자 위에는 맥주가 놓였고 열린 유리문을 통해 정원의 나무 향이 맡아졌다. 맥주잔을 든 김광도가 역시 가운 차림으로 옆에 앉아 있는 조희연을 보았다.

“조희연 씨, 난 내 동반자가 될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뿐이오.”

조희연이 김광도를 보았다. 방금 샤워를 마친 조희연에게서 옅은 비누 향이 났다. 한 모금 맥주를 삼킨 김광도가 딱 한마디 했다.

“믿음이오.”

그때 시선을 돌린 조희연이 어둠에 덮인 베란다를 향해 긴 숨을 뱉었다. 그 숨결 때문인 것처럼 정원에서 나뭇잎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방 안에 잠깐 정적이 덮였다. 오늘 밤 이곳 침실까지 들어오는 과정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웠다. 조희연은 섹스 파트너를 끌고 온 것처럼, 김광도는 클럽의 미녀를 따라가는 것처럼 방 안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막상 샤워까지 하고 나온 후부터의 분위기가 다르다. 물론 샤워는 따로따로 했다. 신선하다. 다 털어놓고, 다 벗고, 다 아는 사이에서 가슴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때 김광도가 긴 숨을 뱉으며 말했다.

“내 인생에서 처음 맞는 감동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