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구호 대신 정교한 시스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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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일 문화부 부장

박근혜 정부 시절 관광 분야 정책 중 정부가 유독 관심을 기울였던 게 ‘환대 캠페인’이었다. 미소와 친절로 외국인 관광객을 맞이하자는 이른바 ‘K스마일’ 운동이다. 당시 정부는 K스마일 운동의 대국민 홍보와 확산에 전력을 다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한국관광공사 사장도 앞다퉈 어깨띠를 두르고 길거리로 나섰다. 고위관료가 어깨띠를 두른 채 명동 한복판에서 기념품을 전달하다가 외국인 관광객에게 잡상인 취급을 받는 민망한 일쯤은 수시로 있었다. 외국인 손님들을 미소로 대하고 진심으로 환영하자는 취지야 나쁠 게 없다. 문제는 관 주도의 캠페인 방식이다. 상인이나 택시기사 등 민간의 자발적 캠페인이야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정책 수단을 가진 고위 공무원들이 띠를 두르고 길거리로 나서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관료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는 대국민 캠페인이야말로 국민을 교화의 대상으로 보던 1980년대에나 통할 법한 일이다. 당시에는 코미디 프로도 ‘경제를 살립시다’는 구호를 앞세웠다. 경제도 살려야 하고, 관광객에게도 친절해야 하지만 그건 구호로 달성할 목표가 아니라 그냥 당위다. 바가지와 불친절이 문제라면 어깨띠를 두르고 길로 나서는 대신, 바가지요금을 근절할 수 있는 시스템과 제도를 만드는 게 공무원의 역할이 아닐까.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관광정책의 초점을 ‘국민 복지’에 맞췄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관광을 지역경제 활성화의 성장동력 관점에서 다뤘다면, 새 정부는 ‘여행이 있는 삶’을 통해 누리는 구성원의 행복감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있다.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의 눈높이에 맞춘 패러다임의 변화다.

이제 ‘어떻게’라는 복잡하고 중요한 질문이 남았다. 사실 ‘여행을 통한 복지’만큼 이해관계가 얽히고 복잡한 게 없다. 구호는 달콤하지만, 문제는 돈과 시간이다. 직장인들에게 여행비용 일부를 국고에서 지원해주는 제도를 둘러싼 논란도 그렇고, 중소기업 근로자의 자유로운 휴가권 보장이나 근로자의 휴가와 각급 학교의 방학을 맞추는 것도 쉽잖은 문제다. ‘구성원의 행복감’이란 추상적인 가치야말로 공유하기도, 달성하기도, 달성 여부를 점검하기도 쉽잖은 목표다. 어깨띠와 구호를 연상케 하는 당위의 문제란 얘기다.

이쯤에서 새 정부에 주문하고 싶은 건 관광 수요자의 복지에 앞서 ‘관광지 주민들의 행복감’부터 돌봐달라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관광객의 양적 확대에 몰두하면서 관광지 주민들은 급격하게 소외됐다. 이름난 관광지가 되면서 땅값이 오르는 바람에 평생을 살아온 땅에서 밀려난 주민들도 적지 않다. 관광으로 얻은 이익을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가게 하는 선순환 구조야말로 우리 관광의 질적·양적 성장을 자연스럽게 담보할 비책이다. 예를 들어 하루 4만 원 안팎의 일당을 받으면서 일하는 날이 고작 보름 남짓인, 그래서 한 달 수입이라고는 60만 원에 불과한 문화관광해설사가 행복을 말할 수 있을까. 최저생계비에 한참 미달하는 보수를 받는 해설사에게 ‘봉사’를 강요하는 관광객은 또 행복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책 실현을 담보하는 건 당위의 구호가 아니라 정교한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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