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0일 인천 숭의동 목공예마을의 클래식가구 제작과정에 참가한 수강생들이 강오원(사진 맨 앞 가운데) 목수와 함께 환하게 웃으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인천 남구 숭의목공예거리의 ‘인생 이모작’
“나무든 인생이든 나이가 들어야 진정한 가치가 드러납니다. 나무를 다듬 듯 인생 2막도 다듬어 가는 거죠.”
‘지∼이잉’ 지난주까지 잘 나가던 건설사 임원이던 임순록(56) 씨가 20일 스카시(스크롤쏘·수직으로 움직이는 실톱)의 스위치를 켜자
요란한 굉음과 함께 목재가 잘려나갔다. 임 씨는 직장에 사표를 내고 지난주부터 인천 남구 숭의목공예거리에 위치한
목공예센터에서 ‘클래식가구’ 만들기 과정에 도전했다. 이날은 그의 ‘인생 이모작’ 첫날인 셈이다.
“건설 일을 하며 목재를 다루는 것은 여러 번 봤어도, 이렇게 직접 해보는 것은 처음이지. 생각만큼 쉽지가 않네.” 처음 자신감과 달리 임 씨가 머쓱해 하며 머리를 긁적인다.
임 씨는 퇴직 후 고향인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소일거리로 목공예를 할 것이라고 했다. 30년 넘게 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며 그래도 목재에 대해서는 좀 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실톱은 어느새 그가 자르려 의도했던 목재의 목줄을 넘고 말았다. 너무 성급했던 탓이다.
임 씨에게 목공예를 가르치던 강오원(66) 목수는 “아까운 목재를 버리게 생겼네”하며, “뭐든 과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하지”라고 충고한다. 부족하게 깎인 면은 사포로 다듬거나 다시 재단하면 되지만 선을 넘어 잘린 목재는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곳 목공예센터에는 임 씨와 같은 중·장년의 수강생 10여 명이 강 목수에게 클래식 가구 만들기를 배운다.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에 이음매를 만들어 의자와 간단한 서랍장을 만드는 과정이다. 도면에 적힌 치수대로 목재를 정확히 재단해야 한다.
또 다른 수강생 김광식(60) 씨는 이미 전문 목수가 된 것처럼 신이 났다. 수강생 중 가장 먼저 강 목수에게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담임 선생님에게 칭찬받은 초등학생처럼 좋아하는 김 씨에게 왜 목공을 배우려 하는지 물었다. 그저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왜 해보고 싶었냐고 다시 묻자 “무언가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좋지 않냐”고 반문한다. 우문이었다.
인생 1막을 마치고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배움은 초등학생에게 왜 학교 가냐고 묻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나이가 들면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기 마련이잖아요.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긋는 것 외에 별로 할 게 없죠. 늘 만들어져 있는 것만을 선택해 왔으니까요.”
김 씨는 환갑의 나이라고 생을 은퇴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며 무기력해 있는 것보다 뭐라도 배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고 했다. 김 씨는 난생처음 자신만의 서랍장을 스스로 재단했다.
10년 차 주말 농부 차정환(65) 씨도 김 씨와 같은 심정이다. 강화도에 작은 땅이 있어 주말이면 텃밭을 가꾼다는 그는 이제 도심을 떠나 그곳에 정착하기로 맘을 굳혔다.
“도시농부학교도 졸업했고 귀농·귀촌아카데미도 다녔지. 그래도 이렇게 손으로 무언가 만들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 손으로 하는 일은 정직하거든.” 그는 주말농장을 하면서 얼마나 정성을 쏟느냐에 따라 작물이 자라는 게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톱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고 했다.
중·장년 수강생 중 홍일점인 김건영(여·53) 씨는 자신보다 네 살 어린 남편 김영중(49) 씨와 함께 이곳에서 목공예를 배운다. 김 씨는 남편과 귀농해 함께 집을 짓는 게 소원이다.
“노랫말처럼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싶은 건 누구나 갖는 로망 아닐까요.”
김 씨는 남편과 함께 무엇을 배운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지만 꿈을 함께 한다는 건 더 행복한 일이라고 했다. 서예가인 김 씨의 남편은 이날 ‘사랑’이란 두 글자를 나무에 새겨 아내에게 선물했다. 수업시간 딴짓을 한다며 꾸지람을 듣기는 했지만 그의 아내는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나이와 이름을 밝히길 꺼린 또 다른 중년의 수강생은 사실 자신은 문화재를 다뤘던 대목장(大木匠)이라고 했다. 칠순이 가까운 나이에 강 목수에게 어렵게 청강을 부탁했다는 그는 소목(小木)을 다루는 공구 사용법을 배우고 싶어 했다. 그는 “큰 기둥을 자를 때와 일상에 쓰이는 문방구를 짤 때 톱도 달리 써야 하는 것처럼 아직도 배울 게 많다”고 말했다.
이들 외에도 이곳 목공예센터에는 40대의 젊은 인테리어업체 창업자와 50대의 보험회사 영업사원도 있다. 이들은 모두 강 목수에게 성공적인 인생 2막의 ‘노(老)하우’를 전수받기를 원했다.
인천=지건태 기자 jus216@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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