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죄책감’에 戰友 유해 찾아 전적지 헤맨 老兵 잠들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전적지 유해발굴 현장을 찾은 고 서정열(오른쪽) 전 이등상사. 국방부 제공

국방부 유해발굴단, 故 서정열 옹 묘지에 ‘특별한 감사패’

6·25전쟁 당시 전투에서 부하들을 잃고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으로 92세 때까지 전우들의 유해를 찾아 전국 전적지를 찾아다니던 서정열 전 이등상사가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6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지난 5월 자택에서 사망한 서 옹의 묘지를 참배하고 유족에게 감사패와 함께 2년여간 국유단과 함께 활동했던 영상을 CD로 제작해 헌정했다고 밝혔다. 7사단 8연대 소속이던 서 옹은 전우들의 유해를 찾아 전국 산야를 홀로 돌아다니다가 2014년 10월 국유단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발굴팀장인 류수은 중사는 “3년 전 강원 양구 백석산에서 유해발굴작전 일과 종료 후 숙소로 복귀하던 중 한 어르신이 버스가 끊긴 시간에 홀로 정류장에 계신 것을 보고 안내를 해 드리기 위해 차를 세웠다”며 “백석산 전투에서 부하를 많이 잃었다는 어르신 사연을 듣고 참전용사의 전우들을 찾는 데 도움을 드리겠다고 약속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서 옹은 국유단과 함께 강원도, 경상도 산을 오르내리며 올해 3월까지 5차례 전적지를 동행했다. 류 중사는 “할아버지의 전투 현장 기억과 생생한 증언은 유해발굴에 큰 도움이 됐으며, 실제 기억해 낸 백석산 전투 현장에서 유해가 발굴되는 놀라운 성과도 있었다”며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유해발굴에 진척이 있었다”고 밝혔다.

올해 4월 초 국유단이 홍보대사 서경덕 교수와 함께한 유해발굴사업 홍보영상의 주인공도 다름 아닌 서 옹이었다. 배우 박하선이 내레이션 재능기부를 한 ‘노병의 마지막 소원’ 영어 제작 영상은 미국·영국·호주 등 6·25전쟁에 참전·지원한 21개 국가를 포함한 전 세계 주요 50개국 한인회 홈페이지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올려졌다. 이 영상은 해외 거주 참전용사, 재외동포 등에게 유해발굴 사업을 알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국유단 박원종 소령은 “온라인 영상은 약 48만 건이 조회됐고, 100만 명 이상에게 노출되는 등 큰 관심을 받았다”며 “서 옹과 국유단의 인연은 각별했다”고 소개했다. 서 옹의 타계 소식은 유족인 아들 서성식(60) 씨를 통해 알려졌다. 서 교수가 타계 소식을 올린 SNS에는 “이 땅의 자유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등 하루 만에 10만 개 이상의 게시글이 올라오는 등 국민적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