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건무 전 청장이 지덕사에 소장된 숭례문 현판의 탁본 글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글씨는 양녕대군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munhwa.com
세계문화유산 등재 어떻게
서울시가 5년 넘게 추진해온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지난 3월 무산됐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예비심사에서 낙제점을 받아 자진 철회한 ‘한국의 서원’에 이어 2년 연속 세계유산위원회에 후보조차 올리지 못하게 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리려면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의 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코모스의 등재 심사도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산은 모두 12건이다. 1995년 석굴암과 불국사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처음 등재한 데 이어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까지 모두 11건의 문화유산과 1건의 자연유산(제주도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이름을 올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면 관광자원 창출 등 이점이 있기 때문에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경쟁적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장과 문화재청장을 역임하며 우리 문화유산의 유네스코 등재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던 이건무 전 문화재청장의 생각은 어떨까.
우선 이 전 청장은 “유네스코 등재 기준은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는데 지자체에서 올림픽 메달을 따듯 경쟁적으로 달려드는 건 예산 낭비만 초래할 따름”이라며 “정말 가치 있는 유산을 보호하고 전승하려는 의식부터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유산이 되려면 보존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유산을 가꿔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며 영국의 스톤헨지를 예로 들었다.
스톤헨지는 도로에서 바로 접근할 수가 없다. 도로 밑으로 들어가도록 했으며 주차장도 멀리 떨어진 곳에 설치했다. 걸어 들어가고 나오면서 문화재에 대한 생각을 프롤로그, 에필로그 식으로 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세계유산이 되면 ‘이득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도 이 전 청장은 일침을 놓는다. 사실 세계유산으로 지정해 놓고 걱정거리가 늘어나는 경우도 많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후에도 관리가 잘되는지 지속적으로 관찰한다. 몇 년마다 보고서도 내야 한다. 그는 지방에 가면 관심 있게 보는데 표지판이 지저분하거나 화장실이 깨끗하지 않는 등 못마땅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세계의 보물이지만 관리가 잘되지 않으면 삭제도 한다.
이 전 청장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가장 시급한 과제로 ‘외교 역량’을 들었다. 문화유산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여러 나라가 편을 들어줘야 하므로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외교적 역량을 갖춰야 하는데 우리에게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세계유산 관련 전문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등 각 전문가 기관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해 의견도 밝히고 각국의 사람도 사귈 수 있는 전문가를 빨리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청장 재임 시절, 세계유산팀을 제안해 발족시켰습니다. 앞으로도 외국어와 문화재에 대한 전문지식을 동시에 갖춘 인력을 양성해야 합니다. 문화 강국이 되기 위해서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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