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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인구 기자의 컬처 톡 게재 일자 : 2017년 06월 28일(水)
육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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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인 기형도(1960∼1989)의 애틋한 연시(戀詩)가 공개돼 화제가 됐습니다. 기형도의 연세대 동문이자 소설가 성석제의 동생 성우제 씨의 블로그를 통해 미공개 시가 처음 알려진 것인데요. 문학을 꿈꾸던 20대 청년 시절의 기형도를 만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술값을 대신 내준 한 여성에게 써준 시를 통해 시인의 풋풋하면서도 풍부한 감성을 느낄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가슴을 설레게 했던 건 기형도의 육필(肉筆)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즉석에서 종이에 펜으로 끄적인 것이었지만 간결하면서도 부드러운 글씨체가 마치 시인을 바로 곁에서 접하듯 친근하고 푸근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게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육필을 찾아보기란 참 어렵게 됐습니다. 이제 손으로 뭔가를 쓴다는 것은 번거로움을 지나 무척이나 비효율적인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필사본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몇몇 출판사에서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필사본을 펴냈고요. 지난 18일 성황리에 막을 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필사본 이벤트가 적지 않은 관심을 모았습니다.

작가 중에도 손으로 쓰는 분이 여전히 많습니다. 조정래 작가는 지난해 발표한 ‘풀꽃도 꽃이다’의 원고 약 2100장을 모두 손으로 썼고요. ‘태백산맥’은 1만6500장, ‘아리랑’은 2만 장이 넘는 걸 육필로 완성했습니다. ‘아리랑’을 쓸 때는 손가락에 마비가 왔을 정도라고 하네요.

‘수인(囚人)’을 펴낸 황석영 작가 역시 고단한 원고작업 때문에 오른손에 마비가 왔었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어깨 통증과 염증이 심해서 주사기로 물을 빼내야 했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지난달 다섯 번째 유작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로 다시 만나게 된 최인호 작가는 생전에 ‘악필’로 유명했죠. 그가 신문 소설을 연재하던 때에는 그 신문사에 최인호의 글씨만을 해독하는 기자가 따로 있었다고 합니다. 반면 ‘풀꽃’ 나태주 시인은 천진난만한 시심만큼이나 단정하고 아름다운 글씨체의 소유자입니다.

사실 육필은 중노동입니다. 편리함에서 컴퓨터 활자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사본이 늘어나고 작가들이 손글씨를 놓지 않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육필에는 자신만의 혼이 담겨 있고, 정돈된 활자가 가질 수 없는 매력이 숨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기형도의 육필 시가 큰 감동을 주듯이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들인 육필에는 컴퓨터 키보드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온기(溫氣), 진심이 스며 있습니다. 문학을 문학답게 그리고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육필의 힘이 아닐 수 없습니다.

clark@
e-mail 김인구 기자 / 문화부 / 차장 김인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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