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공간>영화음악 탄생 배경… ‘왜 불러’ ‘고래사냥’ 송창식이 작곡, ‘날이 갈수록’은 연대앞 주점서 발굴

영화 ‘바보들의 행진’의 음악은 가수 송창식이 맡았다. 그는 영화에 맞춰 ‘왜 불러’와 ‘고래사냥’ 두 곡을 만들었다.

하지만 하길종 감독은 영화 촬영이 끝난 후 남산 인근 한양녹음실에서 녹음과 음악 작업을 하며 두 곡이 삽입곡으로는 훌륭하지만 영화 전체의 리듬이나 흐름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다. 고민 끝에 하 감독은 작업중단을 선언했고, 시간은 일주일이 넘어갔다. 제작진은 어울리는 한국의 음악들을 찾았지만 뾰족한 대안을 찾기 어려웠다. 하 감독은 답답한 마음으로 서울 신촌 연세대 부근에 술을 마시러 갔다가 주점에서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됐다. “가을 잎 찬바람에 흩어져 내리면 캠퍼스 잔디엔 또다시 황금 물결”. 하 감독은 이 노래를 듣고 “앗 이거다”라며 무릎을 쳤고, 송창식은 학생들을 통해 원작자를 수소문해 당시 연세대 국문과 학생이던 김상배를 찾아내 ‘날이 갈수록’을 영화의 테마송으로 사용하게 됐다. 이 노래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돼 영화 전체에 깔렸다. 앞부분의 ‘왜 불러’, 뒷부분의 ‘고래사냥’, 그리고 중간의 ‘날이 갈수록’이 자리를 잡으면서 영화음악이 영화의 완성도와 안정감을 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와 같이 ‘바보들의 행진’은 실제 대학생이던 아마추어 배우들을 과감히 캐스팅했고, 음악도 대학생이 쓴 곡을 우연히 채집해서 사용하면서 당시 대학생활의 사실감을 최대한 살릴 수 있었다. 병태 역을 맡은 윤문섭은 영화가 큰 흥행을 했음에도 이 한 편만 출연하고 난 후 더 이상 배우로 활동하지 않았다. 그 결과 어찌 보면 감독이 처음 의도했던 풋풋한 청춘의 아마추어적 리얼리즘이 제대로 작동했음이 증명된 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