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태풍의 이름…호주서 싫어하는 정치인 이름 붙여 처음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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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사·매미 등 큰 피해 입힌 이름은 영구퇴출

2000년부터 亞 태풍위원회
14개국서 10개씩 제출 받아
4~5년 동안 140개 이름 사용
모두 사용하면 처음부터 다시

태풍 피해국의 요청이 있으면
루사 → 누리,매미 → 무지개 등
해당 이름 퇴출되고 교체 사용

태풍, 어마어마한 피해 주지만
지구 물·온도 균형 유지하기도

지난 2003년 9월 12일 오후 9시, 경남 통영시에는 최대 풍속이 초속 40m인 태풍 ‘매미’가 상륙해 매서운 기세로 도시 곳곳을 삼키고 대구를 거쳐 동해안으로 빠져나갔다. 당시 기상청 국가태풍센터에 따르면, 제주에서 관측한 ‘매미’의 최대 풍속은 초속 60m(하루 최다 강수량 410.0㎜)로 한반도에 영향을 준 가장 강력한 태풍이다. ‘매미’는 북한이 아시아태풍위원회에 제출한 이름으로, 태풍이 온화하게 지나가 주기를 염원하며 연약한 곤충의 이름을 붙였지만, 132명의 사망·실종자와 4조2225억 원의 재산피해를 끼치고 물러났다.

◇자연 현상 중 유일하게 이름이 있는 태풍 = 바야흐로 태풍의 계절이다. 국가태풍센터에 의하면, 한 해 3개 정도의 태풍이 주로 7∼9월에 한반도를 할퀴고 간 것으로 집계됐다. 태풍은 보통 연간 20∼30여 개가 발생한다. 그런데 다른 자연 현상이나 재난과 달리 태풍은 어엿하게 이름을 갖고 있다. 태풍에 이름을 붙인 것은 태풍이 같은 지역에 하나 이상 존재할 경우 이를 혼동하지 않기 위함이다. 가령 최근 한반도에 접근한 태풍 ‘난마돌(Nan Madol)’은 미크로네시아 연방(오세아니아의 섬나라)에서 제출한 태풍 이름으로, 자국의 유적지를 뜻한다.

태풍의 이름은 1953년 호주의 예보관들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당시 호주 예보관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인의 이름을 붙여 태풍 예보를 했다. 예를 들어 싫어하는 정치인의 이름이 앤더슨이라면 “현재 앤더슨이 태평양 해상에서 헤매고 있는 중”이라고 예보했다. 이후 북서태평양에서의 태풍 이름은 1999년까지 괌에 있는 미국 태풍합동경보센터에서 정한 이름을 사용했다. 그러다 2000년부터는 아시아태풍위원회에서 아시아 각국의 태풍에 관한 관심을 높이고자 아시아 지역 14개국의 고유한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태풍 이름은 국가별로 10개씩 제출한 총 140개를 순서대로 사용하는데, 전부 사용하는 데 대략 4∼5년이 걸린다. 140개를 다 쓰고 나면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사용한다. 우리나라는 ‘개미’ ‘장미’ ‘나비’ 등의 태풍 이름을 제출했고, 북한에서는 ‘기러기’ 등 10개의 이름을 제출해 한글 이름의 태풍이 많아졌다.

◇태풍 ‘매미’는 다시 오지 않는다 = 태풍은 그 피해 규모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아시아태풍위원회에서는 피해국의 요청을 받아 이름을 교체하고 있다. 가령 태풍 ‘루사(Rusa)’와 ‘매미’처럼 큰 피해를 준 태풍의 이름은 각각 ‘누리(Nuri)’와 ‘무지개’로 변경했다. 이 밖에도 우리나라가 제출한 태풍 이름 중 ‘봉선화’는 ‘노을’, ‘수달’은 ‘미리내’, ‘나비’는 ‘독수리’, ‘소나무’는 ‘종다리’로 바뀌었다. 이런 식으로 아시아 각국에서 제출한 태풍 이름 중 변경된 것은 모두 42개(2016년 기준)에 달한다.

나라별로 선호하는 태풍 이름의 특성도 다르다. 일본은 ‘덴빈(天秤·천칭)’처럼 별자리 이름을, 중국은 ‘룽왕(龍王·용왕)’ ‘펑선(風神·풍신)’처럼 신(神)의 이름을 선호한다. 2005년에는 홍콩 천문대가 처음으로 태풍 이름을 민간에 공모하자 당시 드라마 ‘대장금’ 열풍의 영향으로 ‘대장금’이 태풍 이름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홍콩 천문대는 ‘대장금’이 홍콩의 특색을 강조하기 어렵다며 채택하지 않았다.

태풍 이름 때문에 간접 광고효과를 본 라면 업체도 있다. 2014년 태풍 ‘너구리’가 북상하자 TV 등 언론 매체에서 ‘너구리’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자 특정 라면 업체의 제품 판매가 30% 급증하는 일도 있었다.

◇태풍의 두 얼굴 = 태풍은 강력한 비바람으로 어마어마한 인명·재산 피해를 낳는다. 1904년 기상 관측 이래 역대 최악의 인명 피해를 낸 태풍은 1936년 ‘3693호’로, 1232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다.

2002년 한반도에 상륙한 ‘루사’는 5조 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또 ‘루사’는 한반도를 통과하면서 가장 많은 비를 뿌린 태풍(하루 최다강수량 870.5㎜)으로도 기록됐다.

하지만 태풍이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태학적으로 보면 태풍은 지구를 지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예를 들어 태풍은 중요한 수자원 공급원으로 물 부족 현상을 해소해주고, 저위도 지역에 축적된 대기 중의 에너지를 고위도 지역으로 운반해 지구 온도를 균형 있게 유지해주기도 한다. 차은정 기상청 국가태풍센터 연구관은 “태풍은 바다와 강 위를 통과하면서 물을 섞어주는 역할을 해 해수 온도를 낮추고 산소를 공급해 녹조와 적조 현상을 예방해 준다”고 설명했다.

이해완 기자 paras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