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sumer >억울해 찾아갔는데… 수임료 사기·불성실 변론에 또 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 = 송재우 기자 jaewoo@

- 변호사 법률서비스 피해 급증

과다수임료 분쟁 7년새 4배 ↑
일부는 공탁금 몰래 빼내 사용

성추행 등 의뢰인 처지 악용
사전에 성공보수 요구하기도

변호사 2만명 시대 경쟁속
법률시장 부익부빈익빈 심화

변호사 보수 표준화 필요성
불법·탈법 처벌도 강화해야

A 변호사는 법조타운인 서울 서초동에 개업했지만 사건 수임이 거의 없어 사무실 운영비를 감당하기에도 힘들었다. 수임료를 선불로 받아 사무실 운영에 쓰는 등 ‘돌려막기’도 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의뢰인에게 지급해야 할 공탁금 1억여 원을 빼내 몰래 썼다. A 변호사는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모(46) 씨는 지금도 B 변호사와 C 사무장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부동산 관련 민사 소송을 준비하며 여러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지만 C 사무장이 가장 적극적으로 상담에 응했다. 변호사를 직접 만나지 않은 것이 꺼림칙했지만 C 사무장의 뛰어난 언변에 계약을 맺고 사건을 의뢰했다. 이후 감감무소식에 소장조차 제대로 접수되지 않은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김 씨는 B 변호사에게 항의했지만 ‘내가 사건을 수임한 적이 없다’는 답만 들었다.

B 변호사가 정말 C 사무장과의 계약 내용을 모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송은 소송대로 망가지고 그에 대한 최소한의 피해 보전도 받을 길이 없었다. ‘변호사 2만 명 시대’를 맞아 변호사들의 과다 수임료, 불성실한 변론과 관련한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극한 상황에 몰린 의뢰인들의 처지를 ‘악용’한 일부 변호사들의 파렴치한 행태는 법조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트릴 뿐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인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편법 넘어 불법까지 저지르는 변호사들 =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생존 경쟁에 내몰린 변호사들은 편법과 탈법을 넘어 불법까지 저지르고 있는 실정이다. ‘생계형 비리’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사건 수임이 쉽지 않게 되자 법조 브로커에게 손을 벌리기도 한다. 서울북부지검은 지난 3일 소송 사건 수임과 법원 로비자금 등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주고받은 임모 변호사와 불법 브로커들을 적발했다. 임 변호사는 2013년 12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법률사건을 소개받은 대가로 사건알선 브로커들에게 소개료 3450만 원을 준 혐의(변호사법위반)로 불구속 기소됐다. 보석 석방을 위한 로비자금 명목으로 200만 원을 요구한 혐의도 받았다.

한 중견 로펌의 변호사는 “불과 10년 전과 비교해도 변호사들이 단순히 수임 관련 문제를 넘어 법을 위반하는 경우가 확실히 늘었다”며 “옆에서 지켜보면 의뢰인의 입장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접수된 진정 사건 중 변호사 선임료를 반환하지 않거나 과다한 수임료를 받아내 발생한 분쟁은 2013년 156건에 달했다. 2006년과 비교하면 4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2013년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서울변회는 판단하고 있다. 대부분 분쟁은 500만∼1000만 원의 수임료를 돌려주지 않아 생긴 분쟁이다.

2년 전 대법원이 형사 사건의 성공보수 약정을 무효로 판단했지만 이와 관련한 ‘꼼수’도 여전하다. 애초 성공보수 약정은 성공을 가정한 옵션이었다. 소송에서 승리할 경우, 혹은 의뢰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을 경우 따로 성공보수를 받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반대로 성공보수가 포함된 금액을 먼저 착수금으로 받고 소송에서 패했을 경우 (성공보수에 해당하는) 일부 금액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성공보수를 챙기기도 한다. 자연스레 미리 받은 성공보수를 사무실 운영비 등으로 ‘돌려막기’하다가 소송에서 패한 뒤 이를 돌려주지 못해 의뢰인과 분쟁에 휘말리는 변호사도 있다. 한 변호사는 “일부 변호사들은 계약 시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기 힘든 성추행 등 혐의를 받는 피의자들을 대상으로 대놓고 성공보수를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불성실한 변론으로 의뢰인과 갈등을 겪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의뢰인과 변호사 간 분쟁 중 과다 수임료 관련 분쟁에 이어 불성실 변론이 두 번째로 많았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최근 법정에서 만난 상대측 변호사들의 서면(書面)을 보면 웃음 밖에 안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실력은 둘째치고 기본적인 성실성도 담보되지 않은 변호사들이 이 판을 다 망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변호사업계 ‘양극화’가 일탈 부추겨 = 이 같은 변호사들이 불법으로 내몰리는 데에는 구조적 요인도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변호사업계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며 일부 변호사들은 사무실을 유지하는 고정 비용을 버는 것조차 여의치 않다는 분석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분석한 지난해 상반기 변호사 1인당 월평균 수임 건수는 1.69건이었다. 1년 동안 20건 정도의 사건만 맡게 되는 셈이다. 2011년 월평균 2.83건과 비교하면 5년 새 절반가량 수임 사건이 줄어든 것이다. 법원이나 검찰 경력이 없는 일반 변호사의 수임료는 보통 착수금이 500만∼2000만 원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서초동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임차료와 직원 월급 등을 포함해 최소 매달 1000만 원 안팎의 고정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적자만 겨우 면하는 변호사들의 수도 상당하다.

2015년 서울대 조사 결과 전관 변호사들의 연평균 수입은 1억4000만 원가량으로 추산됐다. 반면 지난해 서울변회가 회원 256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월평균 순소득이 600만 원 이하라고 답한 변호사가 61%였고, 9%는 3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설문조사의 신뢰도를 감안하더라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 등으로 변호사 수가 큰 폭으로 늘어나며 업계의 양극화도 극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 변호사는 “어렵다고 범죄를 저지르는 변호사 개인이 가장 문제지만 업계의 양극화, 부익부 빈익빈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국 피해는 법률 소비자들이 받게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소비자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도 다양하게 제시된다. 일단 ‘변호사 보수표’를 마련해 표준화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물론 변호사가 제공하는 법률 서비스를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대략적인 수임료 규모를 예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법을 위반한 변호사들에 대한 처벌, 탈법·편법을 자행하는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 수위가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법조계가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서며 이 같은 변호사들의 불법·탈법을 부추긴다는 비판이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