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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7년 07월 28일(金)
나치 전범 통해 본 ‘惡의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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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해부 / 조엘 딤스데일 지음, 박경선 옮김 / 에이도스

2차 대전 이후 서구의 인문학은 ‘나치’와 ‘홀로코스트’를 설명하기 위한 게 전부일지 모른다.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지금까지의 해석이 어디서 잘못됐는지, ‘악(惡)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이었다. 나치 전범재판은 큰 관심사였다. 철학자 해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제기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그런 재판 중 하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범죄심리학자들은 2012년에 국제범죄재판 기록을 살펴본 뒤 “지금까지 전쟁범죄로 기소된 이들에 대한 ‘경험주의적 심리학 연구’는 전무하다”는 결론을 냈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에 답하듯, 나치 전범들의 심리 분석 기록을 통해 악의 실체를 추적한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연합국의 합의에 따라 1945년 11월부터 약 1년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나치 전범자들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인류사를 뒤흔든 엄청난 사건이다 보니 연합국 측은 나치 전범들을 심리적으로 연구해 기록을 남길 필요를 느끼고, 미국 출신의 정신과 의사 더글러스 켈리와 심리학자 구스타브 길버트를 파견했다. 둘은 아쉬칸 포로수용소에서 전범 중 네 명을 집중적으로 진단·검사하고 재판 과정을 관찰했다. 그 네 명은 독일노동전선의 수장 로베르트 레이, 나치의 2인자였던 제국 원수 헤르만 괴링, 극렬한 인종혐오주의자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부총통 루돌프 헤스였다. 명령에 따랐던 하급 관료나 병사가 아니고, 전쟁과 학살을 사실상 기획·지휘했던 ‘거물’들이다. 켈리와 길버트는 당시 최신 심리검사 기법으로 알려진 로르샤흐 잉크반점 검사를 비롯해 다양한 검사와 관찰을 하고 기록을 남겼다.

하버드대 의대 교수를 지낸 미국의 저명한 정신의학자인 저자는 이 기록들을 꼼꼼히 살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전범들의 심리를 분석하면서 악의 본질에 접근하려 시도한다. 정신의학자라면 네 명 모두 ‘악마 같은 사이코패스’이거나 분명한 기능적 뇌질환이 있다는 명쾌한 결론이 나오길 기대할지 모른다. 이런 결론은 인간에 대한 무너진 신뢰를 복구하는 데도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손쉬운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사실상 기획·지휘한 희대의 전범들. 왼쪽 위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헤르만 괴링, 로베르트 레이, 루돌프 헤스. 이들에 대한 심리검사로 악의 실체를 파헤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인간의 심연만 더 확인할 뿐이었다. 에이도스 제공

네 명의 전범에 대한 당시 진단과 관찰을 보면, 재판 도중 자살한 레이는 부검 결과 폭력 행위를 자제할 수 있게 역할을 하는 전두엽의 손상이 발견됐다. 레이는 전쟁 전 머리를 두 차례 다치면서 전두엽이 손상됐다. 나치의 2인자로 게슈타포를 창설하고 강제수용소를 만든 괴링은 재판 과정 내내 당당했다. 결코 사과나 변명을 하지 않았으며, 죄의식이 없는 사이코패스에 가까웠다. 슈트라이허는 반유대주의에 대해 체계화된 믿음을 갖고 있는 편집증적인 인물이었다. 헤스는 해리성 기억상실 증상과 자신이 독살당할 거라는 망상 등 오늘날의 편집성 조현병 증세를 보였다.

저자는 당시에는 최신 심리검사 기법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무시되는 로르샤흐 검사에 대한 신뢰성 등 그때보다 발전된 현대정신의학 관점에서 켈리와 길버트의 진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두 사람은 확신에 차서 주장했지만, 소규모 표본을 근거로 추론했을 뿐이다. 특히 수 개월간 독방에 갇혀 있었고, 사형 집행 가능성이 코앞에 있는 전범들을 상대로 한 각종 심리검사가 얼마나 유효할지, 신뢰하기 어렵다는 분석을 한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당시 네 명의 전범을 함께 진단한 켈리와 길버트가 각기 다른 결론을 냈고, 심지어 최악의 협력관계를 보였다는 점이다. 눅눅한 감옥에서 혐오스러운 전범들과 오랜 시간 마주하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은 두 사람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을 것이다. 스타일도 달랐던 둘은 재판 이후에도 성과를 둘러싸고 언론 노출과 출판 문제로 경쟁하며 법정공방까지 벌였다. 이들 자체가 인간의 심연을 보는 듯하다. 둘은 헤스를 제외한다면 피고들이 법적으로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것도 아니고 정신병을 앓는 것도 아니라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사회심리학 전공인 길버트는 전범들을 삶이 일그러진 자아도취적 사이코패스로 진단한다. ‘드라큘라’처럼 어찌해볼 수 없는 ‘타자’로서의 괴물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정신병리학 전문가인 켈리는 오히려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파악해 허위와 관료주의적 영향을 받은 환경의 산물일 뿐, 본디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간주했다. ‘지킬과 하이드’처럼 상황만 잘못되면 우리 가운데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우리 안의 괴물’이라는 것이다.

저자 자신도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단지 “사람들은 악이 한가지 색깔이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드러난 것은 악의 기저에 있는 여러 행동과 장애의 ‘스펙트럼’이었다”고 말한다. 324쪽, 1만7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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