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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용식 논설주간 게재 일자 : 2017년 07월 28일(金)
박정희 탄생 100년과 TK 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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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논설주간

지난 5·9 대선 얼마 뒤의 일이다. 대구·경북(TK) 어느 씨족 마을에서 문중 행사가 열렸다. 보수 지지율이 늘 전국 최고 수준이고, 새마을운동 발상지임을 큰 자랑으로 여기는 곳이다. 참석자는 대부분 70∼80대 어르신들인데, 서울서 온 언론인 조카(필자)를 둘러싸고 토론이 벌어졌다. “이제 나라 망하겠제?” “왜요?” “대통령이 빨갱이 아이가!” “아닙니다.” “진짜 아이가?” “나랏돈을 좀 펑펑 쓰겠지만, 어려운 사람들 도우려 하니 아저씨들도 혜택을 볼 겁니다.” “그러면 다행이고.” 조카가 되물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싫어하는 이유가 구체적으로 뭡니까?” “그냥 전반적으로 싫다.”

좀 거칠긴 하지만 요즘 TK 정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TK 권력의 뿌리는 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5·16 뒤 1963년 민주공화당을 창당할 때 백남억·박준규·엄민영·김성곤 씨 등 대구고보(경북고 전신) 출신들이 결집했고, 1965년 같은 고교 출신의 이효상 국회의장을 재옹립하면서 세력화했다는 것이, 이들과 정치적 경쟁 관계에 있던 김종필 씨의 관찰과 증언이다.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권력 핵심엔 언제나 신현확 씨 등 TK 인사들이 있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가 전성기였다. 1992년 대선 때 부산·경남 기관장들의 ‘초원복국집’ 모임에서 김기춘 씨가 “TK의 단합과 애향심은 배울 점”이라며 “(부산이 그렇게 못하면) 영도다리에서 빠져 죽자”고 했을 정도다.

그 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시대를 거치며 설움을 톡톡히 겪었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게 표를 몰아주었지만 영광을 되찾지는 못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대구·경북은 갈수록 변방이 되고 있다. 지역 출신 대통령과 정권에 의존한 나머지 세상 변화에 따라가거나 앞서는 데 실패했다”고 토로했다(문화일보 지난 7월 21일자 15면 인터뷰). 실제로 대구엔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만년 꼴찌라는 오명이 따라다닌다.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이 번복되고, 구미시장이 1인 시위를 벌이는 모습은 초라한 위상을 상징한다. 협량한 권력이 막으면 당당하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계속 구걸하는 것은 박 전 대통령까지 구차하게 만드는 부끄러운 일이다.

이처럼 과거의 자부심은 온데간데없고 히스테리 수준의 반감이 앞서고 있다. 이혜훈 새 대표와 주호영 원내대표, 유승민 의원 등 바른정당 지도부는 지난주 TK 지역을 순방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한 배신자”라고 외치는 시위대에 시달렸다. 궁극의 탄핵 책임은 박 전 대통령 본인에게 있다는 점에서 엉뚱한 화풀이다. 초유의 과반 득표를 받고도 정치적 고립을 자초했고, 탄핵을 피할 기회도 수없이 많았지만 팽개쳤다. 이런 모든 행태는 TK를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TK 인사들은 꼼꼼하게 따지는 데 익숙하지 않다. 감각적으로 판단하고 뭉친다. 초원복국집의 “우리가 남이가” 구호가 PK 취향이라면, TK 스타일은 “됐나? 됐다!”일 정도로 단순하다. 그러나 이젠 냉철히 따져야 한다. 전성기 때 상응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오죽하면 박정희기념관을 김대중 대통령이 나서 성사시켰겠는가. 그 뒤에도 건립 모금이 안 돼 무산될 뻔했다. 지금도 권력의 단물만 즐기고 책임은 회피하는 정치인들이 수두룩하다. 친박이 보수와 TK 발전에 어떤 기여를 했나. 성주 사태를 보면서 애국 세력의 본향을 내세울 수 있을까.

문 정부의 ‘정책 실험’이 속출하면서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씨족 마을 노인들도 “우린 살 만큼 살았다. 자식과 손주라도 고생 덜하게 너그들(언론인)이 잘해라”고 당부한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들에겐 딴 나라 얘기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는 정치권에 어느 정도의 ‘브레이크 세력’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없다. 보수 정치를 재건해 균형을 잡도록 해야 한다. 보수 정당의 근간을 이루는 TK의 각성이 필요하다. 애가(哀歌) 타령은 무의미하다. 가슴이 아프더라도 박 전 대통령과는 ‘절연’하고, 이제 사법과 역사의 영역으로 보내 줘야 한다. 그리고 탄핵 찬반을 넘어 보수 정당들이 다시 뭉치게 압박을 가해야 한다. 아직도 ‘박근혜 마케팅’을 하는 사람부터 내쳐야 한다. 그래야 신진들이 빈자리를 채우고 21세기형 ‘신(新)보수’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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